예상치 못했던 러시아의 시리아 철군 발표의 배경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이를 '깜짝' 발표하면서 내건 명분은 시리아 평화협상이 진전되고 있고 지난해 9월 개시한 시리아 참전의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었다.

딱히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기 어려운 원칙론적인 얘기지만 시리아 평화협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현재 시리아 내전은 여전히 어느 한 세력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썩 명쾌하진 않다.

이런 의구심이 짙어지면서 유력하게 등장한 추론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빅 딜'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사우디와 러시아는 반대 진영이다.

사우디는 시리아의 반군을 지원하고 러시아는 사우디의 '숙적' 이란을 거들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 편에 섰다.

러시아가 시리아에 전격 참전하면서 시리아 내전은 '사우디·미국-이란'의 구도에서 '사우디-러시아'의 대리전이 됐다.

중동 정세의 대척점에 선 이들을 두고 제기되는 빅딜 설은 시야를 조금 넓히면 설득력을 얻는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지난달 16일 저유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산유량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이 소식 역시 상당히 뜻밖이어서 당시 숨은 배경에 대한 의문이 컸다.

'오비이락'격일 수도 있지만 이 합의가 발표된 지 한 달 만에 러시아가 시리아 철군을 결정했다.

빅딜 설은 이 두 사건을 이어서 사우디는 자신과 석유 수출량 1,2위를 다투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 아닌 탓에 산유량 담합이 어려운 러시아의 경제적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시리아 철군 약속을 받아냈다는 것이 요지다.

그 반대로 러시아가 시리아 철군을 조건으로 OPEC을 주도하는 사우디에 산유량 동결을 제안했다는 설도 나온다.

사우디 역시 저유가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서방의 경제 제재와 저유가의 이중고를 겪는 러시아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런 빅딜설을 의식해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16일 "러시아와 빅딜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있다"면서 "그런 속사정을 가장 정통한 내가 아는 한 사우디의 경제 정책과 러시아의 외교 정책을 타협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철군 결정은 매우 긍정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철군은 사우디가 퇴출하려는 알아사드 정권에 압박이 되는 만큼 사우디로선 호재다.

이런 빅딜이 사실이라면 최대 걸림돌은 러시아와 가깝고 사우디와 외교관계가 단절될 만큼 긴장이 고조된 이란이다.

러시아는 이란의 최대현안인 산유량 증산과 관련, 14일 이란 정부와 만나 "산유량 동결에 이란은 제외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사우디와 관계를 회복하면서 이란의 원유 증산을 보호해주면서 반발을 무마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은 16일 "러시아의 시리아 철군은 놀라운 게 아니다"라며 "사전에 조율된 정해진 일정에 따른 것"이라고 러시아를 두둔했다.

시리아를 둘러싼 정치·외교·군사적 대회전 속에 존재감이 희미해 진 것은 미국이다.

이는 중동 판도에서 미국의 애매한 위치 탓이다.

미국은 시리아 내전에서 사우디와 동맹이긴 하지만, 원유시장에선 사우디로부터 유가 하락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는 경쟁 관계다.

버락 오바마 정권의 중동 비개입 외교 노선이 겹치면서 전통적 맹방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는 최근 급격히 소원해졌다.

이란과는 핵협상을 타결했지만 여전히 정치·외교적으론 '적성국'이고 러시아와 이런 긴밀한 협의를 할 만큼 관계가 개선되지도 않았다.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