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가입 불가'

정부가 국민 재산 늘리기 프로젝트 차원에서 야심 차게 내놓은 '국민통장'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고객 유치 경쟁에 나선 금융권 수장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연합뉴스가 17일 하영구 은행연합회장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국내 주요 금융지주 회장, 은행장과 증권사 대표들을 상대로 ISA 가입 여부를 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ISA 계좌를 만들지 않았다.

조사 대상자 가운데 이날 현재까지 ISA에 가입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로는 출시 첫날 자사의 일임형 상품에 2천만원을 투자한 권용원 키움증권 대표와 전날 계좌를 만든 김원규 NH투자증권 대표 둘뿐이다.

은행권 가입자는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조용병 신한은행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이경섭 농협은행장 정도다.

4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윤종규 KB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가입하지 않았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주요 은행과 증권사 수장들이 지난해 금융소득 2천만원을 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여서 ISA 가입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ISA는 기본적으로 소득을 입증할 수 있는 근로 소득자, 사업 소득자(자영업자), 농어민이 가입 대상이다.

미성년자라도 근로 소득이 있는 15세 이상이면 '청년'으로 인정돼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전연도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가입할 수 없다.

예컨대 연리 2%짜리 10억원 이상의 예금이 있으면 연간 금융소득이 2천만원 이상이어서 ISA에 가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는 제도 자체가 중산층에 세제 혜택을 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ISA는 애초 전 국민이 가입할 수 있는 영국이나 일본과 같은 모델로 추진됐지만, 부자들의 감세혜택을 위한 것이라는 논란을 피하려고 가입 대상이 대폭 제한됐다.

금융투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ISA는 연소득 5천만∼1억원 수준의 중산층이 가장 큰 혜택을 누리도록 설계됐다"며 "부자감세 논란을 피하고자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를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CEO 중에는 이미 가입한 권 키움증권 대표와 김 NH투자증권 대표 외에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가 가입 자격이 돼 이달 안에 ISA 계좌를 열 예정이다.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은 "개인금융 정보"라며 가입자격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하 회장과 황 회장을 비롯해 30년 안팎을 금융권에 몸담은 대부분의 주요 은행장과 증권사 대표들은 작년도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여서 가입할 수 없다고 답했다.

황 회장이 출시 첫날 증권사 첫 ISA 가입 고객이 된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을 지켜보면서 기념사진밖에 찍지 못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황 회장은 지난달 29일 비과세 해외주식형 펀드(해외주식투자전용 펀드)가 출시될 때는 제1호 가입자가 됐다.

이 펀드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비과세 해외펀드 출시 때와 달리 ISA는 은행과 증권업계 최고경영자들이 가입자 유치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가입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유현민 기자 hyunmin6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