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77% 조직건강 수준 중하위·최하위…중견기업은 91%
외국인 임원 "한국기업 임원실은 장례식장 분위기"
주 평균 야근 일수 2.3일…3일 이상도 43%나

국내 기업들이 불통·비효율·불합리로 점철된 후진적 조직문화라는 '중병'에 시름하고 있다.

상명하복식 업무지시, 상습적 야근, 비생산적 회의, 불합리한 평가방식 탓에 기업의 조직건강도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와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지난해 6월부터 9개월간 국내 기업 100개사의 임직원 4만명을 면밀히 조사해 파악한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를 15일 발표했다.

진단의 결론은 이같이 병든 조직으로는 저성장 뉴노멀시대의 파고를 절대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이다.

구시대적 기업문화의 근인을 찾아내 기업운영 소프트웨어 자체를 바꿔야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 한국 기업 건강상태 '위험수위' = 진단결과 국내 기업의 조직건강 수준은 글로벌 기업에 견줘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중견기업은 심각한 수준이다.

진단은 맥킨지의 조직건강도(OHI·Organizational Health Index) 분석기법을 활용했다.

리더십, 조율·통제, 역량, 책임소재 등 9개 영역의 37개 세부항목을 평가 점수화해 글로벌 기업 1천800개사와 비교한 방식이다.

조사대상 100개사 중 최하위 수준 52개사를 포함해 77개사의 조직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중견기업은 91.3%가 하위수준으로 평가됐다.

상위수준 진단을 받은 기업은 23개사(최상위 10개사)에 불과했다.

<표> 글로벌 기업 대비 한국 기업 조직건강도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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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분 │최상위 수준 │중상위 수?│중하위 수?│최하위 수?│ 계 │
│ │ │ ? │ ? │ ? │ │
├──────┼──────┼─────┼─────┼─────┼─────┤
│ 대 기 업 │ 7 │ 10 │ 11 │ 3 │ 31 │
├──────┼──────┼─────┼─────┼─────┼─────┤
│ 중견기업 │ 3 │ 3 │ 14 │ 49 │ 69 │
├──────┼──────┼─────┼─────┼─────┼─────┤
│ 계 │ 10 │ 13 │ 25 │ 52 │ 100 │
└──────┴──────┴─────┴─────┴─────┴─────┘

영역별로 보면 한국 기업의 취약점은 리더십, 조율과 통제, 역량, 외부지향성에 있었다.

조직내 권위주의가 팽배한 분위기에다 성과평가, 인재확보, 비즈니스 파트너십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반면 책임소재를 따지는 역할 명료화와 동기 부여는 비교적 우수한 편이었다.

조직건강도를 바라보는 경영진과 직원의 시각차도 뚜렷했다.

임원·CEO는 최상위수준(71점)으로 평가한 반면 직원들은 최하위 점수(53점)를 매겼다.

특히 조직 문화·분위기와 리더십의 점수 격차(23~31점)가 컸다.

지속성장 DNA 조사에서는 국내 기업 50%가 이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 수준(66%)에는 못 미쳤다.

또 대다수 기업이 실행중심형 DNA를 보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사적 개선, 혁신활동엔 강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리더십(GE·펩시코), 시장중심(애플·구글), 지식중심(골드만삭스) DNA를 두루 갖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는 "우리 기업은 아직도 제조혁신 역량을 중시하고 선도기업 캐치업을 도전목표로 설정해 빠른 실행을 하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에 머물러 있다"며 "실행중심형만으로는 급변하는 시장 패러디임에 맞춰 능동적으로 변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불합리한 지시에도 Why·No가 없다 = 국내 기업에 임원으로 재직한 외국인 T씨는 "한국 기업의 임원실은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 같다.

불합리한 지시에도 와이(Why), 노(No)를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걸 보고 쉽게 바뀌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상명하복 불통문화의 단적인 반증이다.

대기업 A과장은 "결재라인을 밟을 때마다 보고서 방향이 뒤집힌다.

자동차를 조립했다가 다시 분해하고 그걸 다시 재조립하는 일을 반복하는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한국형 기업문화 심층진단 결과 '습관화된 야근(31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혔다.

이어 비효율적 회의(39점), 과도한 보고(41점), 소통없는 일방적 업무지시(55점) 순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야근 실태 조사결과 주 5일 기준 평균 야근 일수는 2.3일로 집계됐다.

3일 이상 야근자도 43.1%에 달했다.

<표> 주5일 중 평균 야근일수

┌──────┬────┬────┬────┬────┬──────┬───┐
│ 야근일수 │야근없음│ 1일 │ 2일 │ 3일 │ 4일 │ 5일 │
├──────┼────┼────┼────┼────┼────┬─┴───┤
│ 응답율(%) │ 12.2 │ 21.5 │ 23.2 │ 21.8 │ 12.4 │ 8.9 │
└──────┴────┴────┴────┴────┴────┴─────┘

여성 핸디캡과 편견도 문제였다.

'여전히 평가·승진에 불리하다(49점)'는 응답이 나왔다.

여성 야근일수(2.0일)는 남성(2.3일)보다 적지만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수준이다.

'사내 눈치보기'도 조직생활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대기업 여성 과장 C씨는 "야근·회식 때 배려해주지만 눈치 보이고 직장에 몰입하기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여성이 불리한 이유 중엔 '업무능력 편견'(30.4%)도 강했다.

특히 남성이 여성을 '업무에 소극적'(23.7%)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했다.

국내 기업의 직업윤리(75점), 비즈니스 파트너십(59점), 지역사회 공헌(52점) 점수도 글로벌 기업 대비 하위권 또는 최하위 수준에 그쳤다.

한편 구태로 지적받던 회식문화는 업무·개인생활에 지장을 주는지 묻자 76.7%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크게 개선됐다.

회식 횟수는 주 평균 0.45회였다.

(서울연합뉴스) 옥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