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광양터미널·런던사옥 매각…부채비율 400% 이하로"
한진해운이 1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구계획을 마련,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협의에 나서면서 해운 구조조정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22일부터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 싱가포르 등의 해외 선주사와 용선료 인하 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오는 17일엔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채무조정 협의에 나선다.

◆한진해운 “돈 되는 건 다 판다”

한진해운이 마련한 자구계획안은 부채비율을 400% 밑으로 떨어뜨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가 조성하는 12억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의 선박펀드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금융위원회와 해양수산부는 빚만 줄이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해운업 구조조정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박펀드 조성 계획을 지난해 말 발표하면서 지원 대상을 부채비율 400% 이하 기업으로 제한했다.

한진해운이 부채비율 400%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마련해야 할 자금은 8000억원가량이다. 올초 2200억원 규모로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을 대한항공이 전액 인수하면서 현재 부채비율은 600%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를 더 낮추기 위해 상표권, 광양터미널, 영국 런던 사옥을 비롯한 해외 건물, 자사주 등 돈 되는 것들을 팔기로 했다. 약 5000억원을 추가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터미널 사용료, 운송비, 인건비 절감 등을 통해 5년간 매년 1000억원씩 비용을 감축한다는 계획도 있다.

한진해운은 올해 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 1만4000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를 포함시켰다. 궁극적으로 머스크 등 해외 선사와 경쟁할 만한 선박을 갖추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선박펀드 지원을 받아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사에서 건조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비용 감축 등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번 자구계획이 선박펀드 지원으로까지 이어지면 회생의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자구안에 유상증자 방안은 빠졌지만 정부와 채권단은 정상화 방안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대주주 증자도 요구할 계획이다.

◆현대상선, 용선료 인하에 총력

현대상선도 이달 중 경영 정상화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다음달 7일인 1200억원 규모 회사채 만기일을 7월로 연장하기 위한 사채권자집회가 오는 17일 열린다. 이어 24일엔 현대증권 매각 본입찰이 예정돼 있다. 시장 예상가인 6000억원가량에 팔리면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지분을 담보로 빌린 돈 3600억원을 제외하고도 2000억원 안팎의 현금을 확보하게 된다.

현대상선 측은 해외 선주사와의 용선료 인하 협상이 다음달 중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협상 타결을 위해 현대상선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한국의 외채협상 법률고문으로 활동한 마크 워커 미국 밀스타인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고용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지난달 말부터 5곳의 해외 선사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용선료 인하 협상도 긍정적인 결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며 “협상이 마무리되는 대로 출자전환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자전환 대상은 은행 등 협약채권자들이 들고 있는 무보증채권 1조원을 포함해 1조8000억원가량이다. 이 중 절반만 자본으로 전환해도 현대상선은 부채비율을 400% 밑으로 떨어뜨려 선박펀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현대상선은 부산신항만 ‘지분 40%+1주’를 800억원에 싱가포르항만공사(PSA)에 매각하는 계약도 이달 중 체결하기로 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그동안 외국에 항만 지분을 넘기는 것을 꺼리던 해양수산부와 부산항만공사가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현대상선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협상이 급진전됐다”고 말했다.

◆정부 “구조조정 대상 기업 늘리겠다”

최대 골칫거리인 해운업 구조조정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는 가운데 정부는 올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확대해 예년보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금융위 주도로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정부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협의체가 제시한 구조조정의 원칙은 크게 두 가지다. 지원해봐야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좀비기업은 엄격한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걸러내는 게 첫 번째다. 올해만 해도 완전자본잠식, 급격한 신용도 악화 기업을 평가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기준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한진해운, 현대상선을 비롯해 대우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구조조정 방안을 확정한 기업은 이행 상황을 집중 점검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 대출이 많은 대기업 모니터링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동휘/김일규/안대규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