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가전기업이 미국에 수출하는 세탁기의 관세가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미국의 반덤핑 관세 산정 방식이 잘못됐다는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세탁기 관세 분쟁' 한국, 미국에 이겼다
◆세탁기 관세 상당히 낮아질듯

WTO는 11일 “2013년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조치는 WTO 협정에 위반한다”는 취지의 패널 보고서를 공개했다.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한국산 가전 및 전자제품의 대미(對美) 수출이 급증하자 미국 정부는 다양한 비관세장벽을 마련하고 이를 견제해 왔다.

미 상무부는 2012년 말 삼성전자 세탁기에 대해 9.29%, LG전자 13.02%, 대우전자 82.4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이 같은 조치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판단하고 2013년 8월 미국을 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했다.

WTO는 미국의 반덤핑 관세 계산 방식이 잘못됐다고 봤다. 미국은 ‘표적 덤핑’과 ‘제로잉’을 결합한 독자적인 방법으로 반덤핑 관세율을 계산해 왔다. 표적 덤핑이란 수입된 전체 물량이 아니라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판매된 물량에 대해서만 덤핑 마진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법을 적용하면 블랙프라이데이 등 특정 행사 기간에 삼성전자가 다른 미국 업체와 비슷한 할인율로 세탁기를 할인해 팔았더라도 이를 덤핑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제로잉이란 수출 가격이 내수 가격보다 높은 경우를 제외하고 낮은 경우만을 적용해 수출국에 불리하게 덤핑 마진을 계산하는 방법이다. 덤핑마진은 수출 가격이 내수 가격보다 낮은 경우와 높은 경우를 모두 반영해 양쪽을 상쇄한 결과로 산정하게 돼 있지만 미국은 이를 어긴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이 기존 방식대로 반덤핑 관세율을 계산하지 않는다면 관세율은 0%에 가깝게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철강 수출 여건 개선

미국이 개발한 ‘표적 덤핑+제로잉’ 방식이 WTO 심판대에 오른 것은 한국산 세탁기가 처음이다. 이번 판정이 선례로 확정된다면 앞으로 철강, 화학 등 한국의 다른 주력 품목의 수출 여건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반덤핑 관세율 계산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대하이스코, 세아제강 등이 수출하는 송유관에 2.53~6.19%의 반덤핑 관세를 매기고 있다. 포스코 등이 수출하는 전기강판에도 6.88%의 관세를 매긴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은 그동안 외국 철강수출 업체가 판매자 간 가격을 다르게 설정해 판매하는 것조차 표적 덤핑으로 판단해 왔다”며 “이런 계산 방식을 쓸 수 없게 되면 반덤핑 관세도 하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WTO 규정에 따르면 당사국은 패널 보고서 회람 후 두 달 내에 상소할 수 있다. WTO 분쟁해결 절차는 2심제로 운영된다. 미국은 상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소 결과는 상소 후 3개월 안에 나온다.

■ 표적 덤핑

블랙프라이데이 등 특정 시기에만 집중적으로 수출 물건을 싸게 팔거나 특정 지역 혹은 특정 구매자에게만 덤핑 판매를 하는 행위.

■ 제로잉

덤핑 마진을 계산할 때 업체들의 수출 가격이 내수 가격보다 낮으면 덤핑으로 인정하지만, 수출 가격이 내수 가격보다 높으면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아 전체 덤핑 마진을 부풀리는 계산 방식.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