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발언에 방향 급선회…주가 내리고 유로화 급반등
시장 전문가 "마지막 큰 한 방 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10일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았으나 첫날 시장의 반응은 예상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부양책은 대체로 주가를 올리고 통화가치를 떨어뜨리지만, 이번엔 주가는 빠지고 유로화는 치솟은 것이다.

물론 시장의 최초 반응은 좋았다.

부양책 발표 직후 주가와 채권 가격은 오르고, 유로화는 급락해서다.

그러나 30여 분 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기자회견으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독일의 DAX지수는 3% 가까이 올랐다가 곤두박질했고, 결국 2.3% 하락한 채 장을 마쳤다.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도 초반 0.16%까지 떨어졌다가 반대로 0.31% 상승한 채 거래를 마쳤다.

금리가 상승했다는 것은 그만큼 채권 가격은 하락했다는 의미다.

가장 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은 유로화다.

유로화는 ECB의 부양책 발표에 이날 최저 유로당 1.0821달러(1.66%↓)까지 하락했다가 드라기의 기자회견 이후 급반등해 유로당 1.1217달러(1.94%↑)까지 올랐다.

단 몇 시간 만에 0.04달러 가까이 움직인 셈이다.

이날 금융시장의 드라마틱한 반전은 드라기 총재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차단하는 발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드라기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금리는 상당 기간, (자산) 매입 기한을 훨씬 넘어 매우 낮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오늘의 전망과 성장 및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리의) 정책 지원 등을 고려할 때 우리는 금리를 더 인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새로운 사실은 그러한 전망과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 발언에 이번 금리 수준이 하단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리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독일의 2년물 국채 금리는 -0.56%에서 -0.46%로 올랐다.

블랙록의 메릴린 왓슨 글로벌 무제약 채권 전략 헤드는 "드라기 총재가 금리가 더는 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고 발언한 것에 반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당국의 부양책에 대한 회의론이 커진 점도 시장을 반전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ECB의 부양책에도 유로존의 소비자물가는 지난 2월 0.2% 하락하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부추겼다.

여기에 은행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ECB의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더해졌다.

드라기 총재도 마이너스 금리가 가져온 효과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으나, 은행 부문에 대한 우려는 인정했다.

드라기 총재는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마이너스 금리는 차입 환경을 완화하고, 실물 경제에 더 나은 차입 환경을 제공하는 데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은행 수익성 악화에도 금리를 더 내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은행 부문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만큼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릴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라면 대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장은 이를 ECB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차단한 것으로 해석했다.

러셀 인베스트먼트의 바우터 스토컨붐 선임 전략가는 "앞으로 ECB가 변두리 정책은 손댈 수 있어도 정책조합을 크게 수정하진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마지막 큰 한 방(last big bullet)을 쐈다"고 말했다.

프랑스자산운용사 카미냑의 산드라 크롤 투자위원은 "이는 일본은행(BOJ)에서 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라며 "중앙은행들이 앞에 나서 비전통적인 정책을 크게 늘리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중앙은행이 내놓은 조처가 경제 사이클을 돌려세우지 못했다는 의미다"라고 꼬집었다.

(서울연합뉴스) 윤영숙 기자 ysy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