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책 결정에도 세금·벌금은 내야…은행 대출 불이익 받을 수도
재산은닉 등 부정한 방법으로 면책받은 사실 드러나면 면책취소


이모(37)씨는 군 복무 시절 주전 축구선수로 뛰며 여러 차례 우승을 이끌 만큼 건강했다.

전역 후 한 제조업체에 취업하고 결혼까지 한 그는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하루하루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주저앉은 뒤로 이씨에게 악몽 같은 나날이 찾아왔다.

의사 진단은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소병이었다.

시력 저하, 통증, 기억력 감퇴 등 온갖 증상이 나타나 정상적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졌다.

힘들어하던 아내는 결국 이씨 곁을 떠났다.

남은 것은 아내에게 준 위자료와 생활비를 위해 진 은행 빚뿐이었다.

다시 일을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응급실에 실려 가기 일쑤였다.

희소병 환자라는 이유로 일반 병원에서는 감기 치료조차 거부당했다.

자신의 병원비 지출도 모자라 아버지까지 몸져눕자 집안 형편이 더 악화했다.

신용카드 빚 독촉이 잦아졌고, 대출사기범까지 접근해 돈을 털어 갔다.

취업을 못 하니 빚을 갚을 방법이 없었다.

그 와중에 우울증까지 생겨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살길이 막막하던 이씨를 구제한 것은 개인파산이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개인회생·파산 종합지원센터를 우연히 알게 돼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절차를 거쳐 법원으로부터 개인파산과 면책을 확정받아 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길이 안 보인다'…회생·파산 택하는 개인들
파산·회생제도가 채권자를 속이는 불법행위에 악용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법률구조공단에 개인파산·회생을 상담하러 온 이들은 이씨처럼 인생 '막장'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손을 내미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장애인 최모(57)씨는 달동네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야학까지 다니며 주경야독 끝에 마흔이 넘어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사이버대학에 진학해 대학 졸업장까지 품에 안았다.

여전히 궁했지만 노력 끝에 반려자를 만났고 재산도 조금씩 모았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국제금융위기 사태가 터져 사업이 부도를 맞았다.

최저임금 수준 급여를 받는 직장에 취업했으나 4인 가족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했다.

카드 대금, 대출금 등 빚과 이자가 계속 쌓였다.

채권자들의 빚 독촉이 연일 계속됐다.

집안 물품을 압류하겠다는 협박도 들어왔다.

대출을 못 갚자 채무불이행자 명단에 올라 추가 대출도 불가능해졌다.

매달 버는 돈은 이자 갚기에도 버거웠다.

절박한 마음으로 탈출구를 찾던 최씨는 어느 날 지인에게서 개인회생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법률구조공단을 찾은 그는 공단 도움을 받아 개인회생을 신청, 60개월간 일정액을 갚는 변제계획안을 인가받아 겨우 어려움에서 벗어났다.

공단에 따르면 이씨나 최씨처럼 법원에서 회생·파산 결정을 받으려면 '지금으로서는 빚 갚을 방법이 없음'을 서류상으로 명확히 증명해야 한다.

서류 준비에 다소 품이 들긴 하지만 공단 도움을 받으면 미비점 없이 준비할 수 있다.

'건전한 소비 행태'는 회생·파산 인가의 기본 조건이다.

도저히 능력이 안 돼 빚을 탕감받겠다고 해 놓고 실상은 소득에 비해 불필요한 지출이 많은 등 '도덕적 해이'가 법원에서 확인되면 인가받을 수 없다.

◇ 신청부터 면책 결정까지 5∼6개월…은행 대출 등 불이익 가능성
개인파산 선고를 거쳐 면책 결정을 받으면 남은 채무를 갚을 책임을 면제받는다.

개인파산은 파산과 면책을 동시 신청하는 경우가 많고, 신청부터 면책 결정까지는 보통 5∼6개월가량 걸린다.

파산 선고는 채권자들에게 채무 변제 능력이 없음을 알리는 일종의 '선언'에 불과하다.

선고 이후에도 채권자들은 채무자에게 소송을 걸거나 채무 상환을 독촉할 수 있다.

면책 결정까지 마무리돼야 최종적으로 채무에서 벗어난다.

파산 선고만 내려지고 면책이 승인되지 않으면 여러 제약이 따른다.

법적으로 후견인이나 유언 집행자 자격을 얻을 수 없고, 공무원, 변호사, 공인회계사, 사립학교 교원 등도 될 수 없다.

취업규칙이나 사규에 따라 퇴사 당할 수도 있다.

면책 이후에는 채권자의 추심이 금지되는 등 채무에 대한 법적 책임에서 해방된다.

파산 선고 이후 적용된 신분상 제한도 소멸한다.

다만 '전부 면책'이 아닌 '일부 면책'의 경우 나머지 채무를 갚아야 이런 불이익이 제거된다.

면책이 허가돼도 조세, 벌금, 과태료, 고의로 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금 등은 계속 갚아야 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빚보증을 섰다면 그 보증인의 채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면책 효력은 채무자 본인에게만 유효하다.

면책이 결정되더라도 향후 금융기관 이용에는 일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해 은행이 채권자였다면 파산에 따른 면책 사실이 전국은행연합회 전산망에 7년간 등록되므로 대출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재산을 숨기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면책 결정을 받았다가 발각되면 면책이 취소된다.

개인회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기'를 쳐 회생 인가를 받았거나 법원에 재산 관련 보고를 하지 않았을 때, 허위보고했을 때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pul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