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위험보다 '비과세·높은 수익' 강조…불완전판매 우려
금융당국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 방침" 천명


적금 만기를 맞아 최근 은행을 찾은 A씨는 창구 직원으로부터 목돈을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로 옮기라는 사전예약 권유를 받았다.

수수료가 얼마인지 등 이런저런 질문을 하자 해당 직원은 "ISA에 담을 상품 종류가 정해지지 않았고 운용 수수료도 아직 안 나왔다"며 똑 부러진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비과세 상품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리 예약하면 경품 추천 등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며 사전 예약서 작성을 요청했다
재산 불리기 차원에서 도입되는 ISA의 본격 출시를 앞두고 제기되는 가장 큰 우려는 불완전판매 가능성이다.

ISA에는 예·적금 같은 원금 보장형 상품 외에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는 투자 상품이 여럿 담길 수 있다.

그러나 금융권의 과열 유치 경쟁 와중에 이런 부분이 묻히면서 안정 성향 고객에게도 위험도가 높은 상품이 팔려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의 자제 요구에도 주요 은행과 증권사들의 사전 유치 경쟁은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다수 은행과 증권사의 영업점 창구에서는 ISA 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여전히 고가의 경품을 미끼로 사전 가입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취재진이 3일 찾아간 한 시중은행 지점은 아예 사전 예약이 아니라 정식 신탁 상품 거래서를 고객에게 나눠주면서 가입 신청을 받았다.

운용 수수료와 상품 종류에 대한 설명 없이 일단 정식 계약 서류에 서명하게 하고 ISA에 담을 금융 상품은 공식 출시일 이후에 고르도록 하는 편법을 쓰는 것이다.

심지어 A은행은 신청서를 2일부터 받기 시작했다며 ISA 상품 신탁상품거래신청서를 건네기도 했다.

운용수수료와 상품종류에 대한 설명 없이 고객 신용정보와 관련한 동의서와 투자 성향과 관련한 설문지 형식의 투자자정보 확인서를 함께 줬다.

세부적인 상품군 조정은 추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그러나 한 대형 증권사의 프라이빗뱅커(PB)는 "아직 회사에서 구체적인 상품안이나 운용 수수료 계획이 확정돼 내려오지 않아 고객의 상담 요청에 제대로 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창구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ISA를 '좋은 상품'이라고 강조하는 근거는 공통적으로 첫 번째가 비과세이고 두 번째가 높은 수익률이었다.

하지만 ISA의 비과세 혜택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최소 4~5%의 수익률을 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적은 금액으로 보수적 운용을 할 경우 자칫 운용수수료로 내는 금액이 비과세 적용액보다 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수료가 ISA 성패의 변수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같은 맥락에서 일각에선 초기 가입자 선점 경쟁 못지않게 ISA의 수수료 체계가 고위험군 상품 판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각 금융사는 지금까지 눈치보기를 하면서 ISA 수수료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예·적금, 환매조건부채권(RP), 머니마켓펀드(MMF) 등 안전 자산 위주의 포트폴리오로 구성된 ISA에는 비교적 낮은 수수료가 적용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은행권의 예·적금 위주로 재테크를 해온 보수 성향 고객은 신탁형 ISA에 예금 등 원금 보장형 자산의 구성비를 높일 가능성이 큰데 이들에게는 0.1% 이상의 수수료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보다 높은 수수료를 내고 ISA에 예금 위주로 들어오면 수수료가 없는 보통의 과세 예금과 실질 수익면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채권형 펀드, 혼합형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파생결합증권 등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투자 상품을 높은 비율로 편입한 ISA를 팔 때는 금융사들이 많게는 연간 가입 금액의 1%에 가까운 운용 수수료를 챙길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사들이 자연스럽게 수수료 수입이 많은 고위험 상품군 판매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임형 ISA의 경우 금융사는 표준화된 설문 조사를 통해 고객 성향을 다섯 단계로 구분하고 그에 걸맞은 위험도의 모델 포트폴리오만 판매해야 한다.

그렇지만 치열한 경쟁 구도에선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팔 수 있는 쪽으로 고객의 답변을 현장에서 유도할 공산이 큰 것이 문제다.

게다가 신탁형 ISA는 고객이 자기 책임으로 투자하는 개념이어서 실제 성향보다 공격적인 투자를 할 길이 열려 있다.

이는 곧바로 불완전 판매로 연결될 환경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한 은행 창구 직원은 "최근 손실이 나고 있는 H 지수에 기초한 ELS는 지금이 바로 살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H지수가 미덥지 않다면 S&P500 지수, 유로스톡스(Eurostoxx50) 지수를 추천한다"며 "현 상황에선 유럽이나 미국이 파산해야 원금손실이 나는 격"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투자는 사실상 수익과 더불어 손실을 전제로 한 것이긴 하지만 불완전판매에 대한 우려가 잦아들지 않자 금융당국은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3일 월례 브리핑에서 "ISA 불완전 판매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금융회사 일선 영업 창구의 판매 실태를 상시 모니터링할 것"이라며 "불완전 판매로 판단되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정히 조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소비자 단체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남희 금소원 대표는 "ISA는 소비자의 의도와 다르게 위험상품군이 한 계좌에 묶여 운영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며 "과거와 다르지 않은 소비자 보호 제도에서 위험상품군을 적극적으로 판매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이달 들어 불완전판매를 예방하기 위해 유관기관 간의 협의를 본격 시작했다"며 "TF(태스크포스)를 가동해 현장점검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정 기자 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