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공간의 추억'을 기록하다…아날로그서 찾은 VR의 미래
[ 박희진 기자 ] "어제 몬주익 언덕에서 360도 카메라(LG 360 캠)로 찍은 영상입니다."

펄럭이는 스페인 국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노인이 옆을 스쳐 지나간다.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멀리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반짝이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니 태양의 도시 바르셀로나의 햇살이 눈부시다.

가상현실(VR) 헤드셋을 벗자 다시 피라 그랑비아 컨벤션센터 내 LG전자 부스로 돌아왔다. VR 기기를 썼다 벗었을 뿐이지만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한 셈이다.

◆ '타임머신' 같은 VR…대중화 시작은 '공간의 기록'

지난 25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6'의 주인공은 단연 VR이었다.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새 먹거리인 VR 기기를 대거 선보였고, 이동통신사들은 VR로 5세대(5G) 기술을 시연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는 올해가 VR 대중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업계가 대중을 사로잡고자 내놓은 무기는 화려했다. VR에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넣어 다채로운 체험을 제공했다. 4차원(4D) 의자에 앉아 VR 헤드셋을 쓰면 실제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우주, 해저를 탐험할 수 있는 식이다.
삼성 기어 VR 4D 체험을 즐기고 있는 모습. / 사진=박희진 기자
삼성 기어 VR 4D 체험을 즐기고 있는 모습. / 사진=박희진 기자
그러나 기자의 눈길은 화려한 4D 콘텐츠보다 바르셀로나 언덕을 담담히 촬영한 360도 영상에 머물렀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되돌리는 것은 가보지 못한 곳을 경험하는 것보다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VR 대중화의 싹을 360도 카메라에서 찾은 이유다.

일상 공간을 촬영한 360도 영상은 VR과 만날 때 하나의 '타임머신'이 됐다. 지금처럼 단순히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순간 이동해 그 공간을 다시 경험하게 했다. 당시 나를 둘러싸고 있던 360도 공간이 오롯이 재연되고 그 중심에 내가 서게 되는 셈이다.
삼성 '기어 360'(왼쪽). LG '360 캠'을 G5와 연결한 모습. / 사진=박희진 기자
삼성 '기어 360'(왼쪽). LG '360 캠'을 G5와 연결한 모습. / 사진=박희진 기자
◆ VR 콘텐츠, '기록' 다음은 '소통'

360도 영상은 추억 회상에 머물지 않는다. 일상의 기록이 소통이 되는 시대, 360도 영상은 VR 기반의 새로운 소통 방식을 가져올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360도 영상과 VR로 서로의 공간을 들여다보고 소통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소통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VR 콘텐츠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가상현실 속 소통'이 될 전망이다.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의미있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다. 언제든지 헤드셋을 쓰면 친구들과 캠핑을 하고, 멀리 떨어진 가족들과 가상의 집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21일 삼성전자 갤럭시S7 공개 행사에 등장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VR을 '가장 사회적인 플랫폼·차세대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페이스북은 VR 영상이 게시되는 플랫폼이자 VR 기반 SNS로 발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저커버그는 "10년 전에는 사람들이 경험을 문자로 공유했고 최근엔 이미지로 기록하지만, 이제는 모두 함께 있는 것 같은 경험을 VR로 나누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VR은 분명 새로운 기술을 입은 기기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들을 대중화시키는 '키'는 하나다. 추억을 회상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소통. 가장 아날로그적인 인간의 행위는 VR로 새로운 페이지를 열고 있다.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