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예산 심의 절차를 개편, 연간 200조원에 이르는 중기(中期) 재정사업 심의를 올해부터 3개월가량 앞당겨 5월 말까지 확정하기로 했다. 6~8월에 진행되는 본예산 심의를 강화해 재정 누수를 막겠다는 취지다. 재정 전문가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구상 중인 재정 개혁의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정 누수 막아라"…유일호표 개혁 신호탄
앞당겨지는 중기 사업 심의

기재부 예산실 고위관계자는 “올해부터 2년 이상 걸리는 중기 재정사업 심의를 5월에 마무리하고 여름에는 내년도 예산심의에 주력하는 식으로 예산 편성 과정을 바꾸기로 했다”며 “9월 국회 예산 제출을 앞두고 심의해야 하는 사업 수를 줄이면 세부 내용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 편성은 국가재정법에 따라 △중기사업계획서 제출(부처) △예산안 편성지침 통보(기재부) △예산요구서 제출(부처) △예산안 편성 및 국회 제출(기재부) △국회 심의 및 의결 순서로 이뤄진다. 각 부처는 매년 1월 말까지 2~5년 소요되는 중기 사업에 대한 계획서를 기재부에 제출한다. 대형 건설사업이나 복지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사업이 대다수다.

지금까지는 계획서를 1월 말까지 제출하더라도 봄철에는 사업의 타당성 등을 확인하고 실질적인 금액 조정은 예산요구서 제출 이후 6~8월 진행되는 기재부 편성 과정에서 이뤄졌다. 올해부터는 이 과정을 5월 말까지 끝내기로 한 것이다.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9월까지 내년도 사업 심의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는 셈이다.

예산실 관계자는 “중기 사업은 전체 사업 수의 3분의 1, 금액으로는 60%에 이른다”며 “환율, 유가 등 비용 변수가 있는 사업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5월 말까지 끝낸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불필요한 예산 줄인다”

기재부로선 더 효율적으로 예산을 짤 수 있지만 각 부처 입장에선 부담이 커진다. 지금까지는 봄철에 중기 재정사업 심의가 끝났어도 본심의 때 예산을 늘리거나 사업을 추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구 의원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으로 기재부는 기대하고 있다. 예산실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여름철 심의 강도를 높여 불필요한 예산은 줄이고 필요한 분야에 더 투입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2014년 시행된 국회법 개정안(국회선진화법)도 이 같은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 법에 따라 정부 예산안은 2014년부터 매년 12월2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정부의 예산안 국회 제출 시한도 10월2일에서 9월2일로 한 달 앞당겨졌지만 공무원의 업무 부담을 고려, 3년에 걸쳐 10일씩 줄이기로 했다. 법 시행 3년째인 올해부터는 9월2일이 마감일이다.

유 부총리는 취임 전부터 재정건전성에 대한 소신을 꾸준히 밝혀왔다. 예산실 관계자는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유지하면서 재정건전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유 부총리의 소신”이라며 “신산업 육성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재정을 아끼지 않되 그외의 부분에 대해선 예산 절감 방안을 찾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내부 업무 절차를 개선해 비효율을 잡아낸다는 계획이다. 송언석 2차관을 중심으로 재정개혁 방안을 찾기 위한 회의도 수시로 열고 있다. 오는 4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개혁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