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수출 비중이 내수 앞질러…반도체 공부하며 하이닉스 인수

[대한민국 신인맥] 최태원 회장의 '뚝심 경영'…내수 기업에서 수출 기업으로
재계에서 최태원 회장은 ‘뚝심의 경영인’으로 불린다.

여러 고난과 고초를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SK그룹을 자산 총액 기준 국내 3위 기업으로 도약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행복’과 ‘자율’은 최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오른 후 항상 내세워 온 경영 이념이자 그의 경영 철학이기도 하다.

최 회장은 1960년생으로 신일고와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재벌가에서는 2세들에게 기업 승계를 염두에 두고 경영학을 전공시키는 것이 보통이지만 부친인 고 최종현 회장은 최 회장에게 이공계열 진학을 조언했다. 과학적 사고와 논리적 학문을 배우는 것이 장차 기업 경영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때문인지 최 회장은 소탈한 가운데도 논리적이며 독서와 토론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룹 총수의 스타일은 기업 문화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SK그룹에는 캔미팅(음료 캔 하나씩을 들고 격의 없이 토론하는 문화)이 생겨나기도 했다.

38세에 경영권 승계

SK그룹에서 오래 근무했던 한 직원은 “최 회장은 소탈해 격의 없고 감정 표현에도 솔직하다”며 “다른 그룹 오너들과 달리 자신만의 생각을 강조하기보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보고 받는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소탈함은 2007년 방북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구 회장 등을 디지털카메라로 직접 찍어 주는 모습이 보도되며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다.

최 회장은 1991년 SK상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부장으로 입사해 1996년 SK(주)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OK캐쉬백 등 e-비즈니스 분야에 공을 들이던 최 회장은 1998년 8월 아버지인 최종현 회장의 별세로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SK(주) 회장직에 올랐다.

최 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당시 가족회의에서 결정됐다. 가족회의에는 SK 창업자인 고 최종건 회장의 아들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 최신원 SKC 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최재원 SK 부회장이 참석했다. 사촌들은 아무도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반대하지 않았다. 다른 그룹처럼 형제와 사촌 간 경영권 승계에 대한 다툼도 없었다.

당시 가족회의에서 최종건 창업 회장의 장남인 고 최윤원 회장은 “그룹은 손길승 부회장이 이끄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가고 2세 중에는 최태원 상무가 그룹 경영에 참여하자”고 결정했다. 이는 최종건 창업 회장과 동생인 최종현 회장 때부터 쌓아 온 우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회장직을 승계하긴 했지만 당장 경영 일선에 나서기에는 자신과 그룹에 부담이 너무 크다고 느꼈다. 이 때문에 가족회의 결정대로 당시 손길승 SK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현 SK텔레콤 명예회장)을 전문 경영인으로 두고 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 분석에 들어갔다.

1998년의 국내 경제 상황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대우·한보 등 굴지의 기업마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은 섣불리 경영 일선에 나서기보다 전문 경영인에게 기업 운영을 맡기며 경영 수업에 매진했다.

이때 최 회장과 함께 그룹을 맡았던 손 명예회장은 SK그룹 최초의 대졸 신입 사원으로 그룹 회장에까지 오르며 SK를 이끌었다. 1941년생으로 진주고와 서울대 상학과를 졸업한 손 명예회장은 1978년 선경그룹 경영기획실장에 임명된 뒤 20년간 그룹 경영기획실장으로 근무했다.

1997년 고 최종현 회장이 직접 손 명예회장을 SK텔레콤 대표이사에 임명했다. 그는 2011년부터 SK텔레콤 명예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선경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기 직전인 1997년 사명을 SK그룹으로 변경했다. 당시 최종현 회장과 선경그룹 임원들은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경이라는 이름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경의 영문명인 ‘Sun Kyoung’을 잘못 띄어쓰기할 경우 ‘Sunk Young(가라앉는 젊음)’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진출을 노리던 선경은 SK로 사명을 변경한 뒤 ‘차이나인사이더’를 추진한다. 차이나인사이더는 SK가 중국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이 아닌 중국 기업처럼 현지에서 사업을 추진해 중국에 재투자하는 ‘내부자(insider)’라는 뜻이다.

SK그룹의 중국 진출은 1990년 재계 최초로 이뤄졌다. 먼저 중국 푸젠성에 비디오테이프 공장을 지어 1991년 한중 수교 이전부터 중국 사업을 시작했다.

최태원 회장 역시 국내 사업보다 해외 진출을 더욱 독려하며 중국 사업에 열을 올렸다.

2009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SK그룹 최고경영자(CEO) 전략 세미나’에서 최 회장은 “2005년 항저우 선언 이후 추진해 온 중국 중심의 글로벌화에도 변화가 요구된다”며 “국내에서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과 상품을 가지고 중국 사업에 나서는 접근 방법이 아니라 철저하게 중국 관점에서의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SK그룹은 2000년대 들어 에너지·석유화학 분야까지 중국에 진출했다. 또 2013년 6월에는 SK종합화학을 통해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중국 최대 국영 석유 기업인 시노펙과 우한에틸렌 합작 법인 설립 계약을 하기도 했다.

SK그룹은 국내외적인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글로벌 성장 축을 찾아왔다.

최태원 회장은 “SK그룹은 국내에서는 경쟁사와의 경쟁력 차이가 줄어들고 있고 해외에서는 신흥 경쟁국의 부상과 기술 융합화 트렌드로 도전을 맞고 있다”며 “이 같은 국내외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 중심의 성장 전략 등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신인맥] 최태원 회장의 '뚝심 경영'…내수 기업에서 수출 기업으로
하이닉스 인수로 세 번째 ‘퀀텀 점프’

최태원 회장은 그동안 내수 시장에 집중했던 SK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최 회장은 사업과 관련한 관심사가 생기면 해당 영역을 직접 공부하고 그룹 전문가들과 토론을 즐기기로 유명하다.

하이닉스 인수 때도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를 직접 공부했고 서울 모처에서 반도체 관련 스터디 모임을 가지며 반도체를 연구했다. 반도체의 기본 원리는 물론 반도체 역사, 세계적 기술 동향 등을 망라했다. 스터디 모임에는 다양한 반도체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당시 적자 기업이었던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도 최 회장 스스로 반도체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1년 7월 8일 SK텔레콤은 하이닉스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고 인수를 구체화했다.

재계에서는 신중하지만 결단을 내리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최태원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이 하이닉스 인수전에서 그대로 나타났다고 평가한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경영 이념으로 삼았던 고 최종현 회장의 DNA를 물려받은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 국가 차원은 물론 SK그룹의 체질을 바꿔 놓았다.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는 단순한 인수·합병(M&A)이 아니었다. SK그룹의 사업 체질을 글로벌화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다.

SK그룹이 1980년 대한석유공사 인수와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라는 두 번의 ‘퀀텀 점프’를 통해 성장 축을 확보한 것처럼 하이닉스 인수 역시 세 번째 도약의 발판이 됐다.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기술(ICT)이라는 양대 성장 축에 반도체라는 제3의 성장 축이 더해지는 안정적인 구조를 갖춘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성장 가능성만 확인되면 시장이 예상하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써서라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2011년 하이닉스 인수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SK텔레콤은 하이닉스 채권단이 보유한 주식(구주) 4425만 주를 1조841억원, 새로 발행하는 주식(신주) 1억185만 주를 2조3426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전체 인수 금액은 3조4267억원으로 당초 예상됐던 인수 가격(약 3조1000억원)보다 10% 정도 비싼 금액이었다. 인수 금액이 시장의 예상보다 컸던 것은 그만큼 하이닉스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최 회장의 결단 때문이었다.

SK그룹이 새로운 성장 축으로 하이닉스를 선택한 것 역시 ‘기술’과 ‘글로벌’이라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며 확보한 하이닉스의 글로벌 비즈니스 노하우와 전 세계 15개국 이상에 펼쳐진 하이닉스의 해외 사업망은 이후 SK그룹의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트렌드를 기반으로 글로벌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주사 ‘옥상옥’ 구조 해소

이처럼 최태원 회장은 내수 기업으로 불리던 SK를 수출 기업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공을 들였다. SK그룹의 2014년 연간 실적을 보면 총매출 147조9055억원 중 수출은 76조7322억원(51.9%), 내수는 71조1732억원(48.1%)으로 나타났다. 수출이 내수를 5조5589억원 초과한 것이다.

이런 수출 초과 현상은 SK그룹의 주력 사업이 과거 에너지와 통신 중심에서 탈피해 화학·반도체·석유화학 등 수출형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됐다는 것을 뜻한다.

SK그룹의 수출은 앞으로도 더욱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은 2011년까지만 해도 상장사를 기준으로 따지면 수출이 내수보다 19조5692억원 정도 적었다. 이 격차가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한 뒤 7818억원까지 줄면서 균형을 맞췄고 2014년부터 수출이 내수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최태원 회장이 생각한 하이닉스의 인수 효과가 현실화된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2004년 이후 그룹과 개별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글로벌 성장이 필수라고 판단, ‘부진불생(不進不生)’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며 수출 드라이브를 본격적으로 제안했다. 이후 최 회장 본인 역시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자원 개발 및 해외 판로 확보에 매진했다.

여기에 SK그룹의 경영 시스템인 ‘따로 또 같이’가 안착하면서 각 계열사들이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공동 작업을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 최태원 회장은 그룹 지배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2015년 SK(주)와 SK C&C의 합병을 이뤄 냈다. 이에 따라 SK C&C가 그룹의 지주사인 SK(주)를 지배하는 ‘옥상옥(屋上屋)’ 구조가 해소되고 최 회장이 통합 지주사인 SK(주)를 통해 주요 계열사를 직접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

한경비즈니스=김태헌 기자 k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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