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문화의 꽃을 피우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갤러리 일호에서 장애가 있는 예술가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잇-장’이란 이름의 독특한 전시회가 열렸다. 비영리 예술단체 로사이드가 기획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작가미술장터였다. 전시 작품은 로사이드가 발굴한 ‘날 것의 창작자’들의 그림과 그들과 협업하는 ‘공동 창작자’들이 만든 수공예품이었다.

자폐를 가진 한 청년의 노트를 본 예술가가 버려진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하며 설립한 로사이드는 의미 없는 낙서 또는 장애에서 비롯된 증상으로 여겨져 버려지던 예술작업을 독창적인 창작세계로 재조명하고 사회에 소개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소속 예술가들이 서울 북부병원에서 환자들의 모습을 그리는 ‘함께 그리는 풍경’ 활동을 비롯해 아티스트 워크숍, 그룹 전시회 등을 열고 있다. 로사이드는 장애가 있는 창작자들을 ‘날 것의 창작자’, 그들과 팀을 이뤄 공동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을 ‘공동 창작자’라고 부른다.

로사이드의 활동은 2013년 11월 삼성문화재단과 결연을 맺은 이후 더 활발해졌다. 삼성문화재단은 2014년부터 로사이드의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잇-장’ 전시회도 후원했다. 로사이드 관계자는 “삼성문화재단과 결연을 맺고 안정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작가들이 창작 활동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사회 곳곳으로 파고들고 있다. 예술 영재 등 기존 엘리트 중심의 지원에서 벗어나 제도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예술가나 청소년, 지역 소외 계층의 문화 활동에 눈길을 돌리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전통예술과 국악, 문학 등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심이 많지 않았던 부문에 대한 지원도 늘고 있다. 메세나란 기업이나 개인이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의미한다. 로마시대 첫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자 대신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후원했던 가이우스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기업, 문화의 꽃을 피우다
한국메세나협회가 매년 매출액 및 자산총계 기준 국내 상위 500대 기업과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에 따르면 2014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액은 1772억원으로 전년(1753억원)에 비해 1.1% 증가했다. 메세나협회 관계자는 “2013년(9.3%)에 비해 전년 대비 증가율은 낮아졌지만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간 경기 상황과 세월호 사건 여파로 인한 공연계 불황 등을 감안하면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기업, 문화의 꽃을 피우다
삼성문화재단과 로사이드처럼 기업이 예술단체와 결연을 맺고 지원하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에 참여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지난해 대기업 결연의 지원 건수와 지원액은 37건, 37억4000만원, 중소·중견기업 결연의 지원 건수와 지원액은 93건, 23억2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사업을 시작한 2006년과 비교해 지원 건수는 7.4배, 지원 금액은 4배가량 증가했다.

서양음악과 미술에 쏠렸던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은 국악, 문학, 연극, 무용 등 그동안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분야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2014년 국악 부문 지원액은 전년에 비해 16.4%, 연극은 32.1%, 문학은 79.6%, 무용은 63.3% 증가했다. 국악 부문에서는 크라운해태제과가 2014년 전통연희공연 전문단체인 동락연희단과 결연을 맺은 데 이어 지난해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한 전통예술 축제인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을 지원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국립국악원과 결연을 맺고 전통예술 인재 육성과 저변 확대를 위해 ‘온 나라 국악경연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강은일 해금플러스’와 결연을 맺고 전통악기인 해금 연주 발전을 위해 중견 해금 연주자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기업, 문화의 꽃을 피우다
기업들은 예술인과 예술단체 지원뿐 아니라 청소년 문화예술 교육과 지역 소외계층 문화 향유 등 ‘생활 문화’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LG연암문화재단은 환경·지역적인 이유로 문화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청소년과 소외 계층의 문화적 박탈감을 덜어주는 동시에 창작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무료 공연 프로젝트인 ‘LG 스쿨콘서트’를 11년째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모테트합창단의 ‘합창명곡 여행’과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아카펠라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로 경기 안성 가온고와 강원외고, 경북외고, 인천외고 등을 찾았다. 벽산문화재단과 벽산엔지니어링이 운영하는 ‘벽산 넥스트클래식’은 지난해 세종솔로이스츠, 한국페스티발앙상블, 서울금관5중주, CUFA앙상블 등 4개 음악단체와 함께 서울·경기의 6개 고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재단은 농·산·어촌 지역 초등학생에게 인성 함양과 재능 발견을 통해 미래의 꿈을 설계할 수 있도록 각종 문화예술 교육을 제공하는 ‘온누리스쿨 예술교실’을 5년째 운영하고 있다. 올해도 나눔문화예술협회와 함께 9개 도, 33개 학교에서 합창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