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SDI가 보유 중인 삼성물산 지분 20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당초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마련했던 자금 일부를 삼성물산 투자로 돌렸다.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순환출자 문제도 해소하기 위한 포석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물산 주식 2000억어치 매입…순환출자 해소+지배력 강화
◆이 부회장 지분 17%대로 늘어나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이날 장 마감 후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삼성SDI가 추가로 보유하게 된 7650억원 규모(2.6%)의 삼성물산 지분 중 5000억원어치를 나눠 매입했다. 이 부회장이 2000억원어치(130만5000주)를, 삼성생명재단이 3000억원어치(200만주)를 각각 사들였다. 이 부회장의 매입 단가는 이날 종가인 15만3000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물산 주식 2000억어치 매입…순환출자 해소+지배력 강화
삼성SDI는 이 부회장과 삼성생명재단에 매각한 5000억원어치 외에 나머지 2650억원 규모의 지분도 이날 장이 끝난 뒤 기관투자가들에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했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크레디트스위스(CS)가 매각 주관사를 맡았다. 이로써 삼성SDI는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끊게 됐다.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은 기존 16.4%에서 17.07%로 늘어나 최대주주 지위가 더욱 공고해졌다는 분석이다. 삼성이 2013년 하반기부터 진행해온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시장이 예측해온 대로 삼성물산이 그룹의 새 지배구조 내에서 핵심 회사가 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40.93%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와 삼성생명 지분 19.34%를 갖고 있다. 재계에선 삼성물산이 조만간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7.2% 중 일부를 추가로 매입해 삼성전자의 1대 주주가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주식 매수에는 삼성물산 주가 부양 의지도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제일모직과의 합병 이후 주가가 19만원대에서 최근 13만원대까지 빠진 뒤 횡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주식 매입은 시장에 주는 일종의 신호”라며 “삼성물산이 사실상 그룹 지주회사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준 만큼 향후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은 이번 지분 거래로 새로 형성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그룹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며 삼성SDI가 추가로 보유하게 된 삼성물산 지분 2.6%를 처분할 것을 요구했다. 매각 시한은 통합 삼성물산 출범일인 지난해 9월1일 이후 6개월째인 다음달 1일까지였다.

◆삼성엔지니어링 주식도 매입

이 부회장은 삼성엔지니어링 주식도 사들이기로 했다. 이 회사가 갖고 있는 자사주를 포함해 1000억원어치를 매입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이날 1차로 삼성엔지니어링 자사주 전량인 302만4038주(1.5%)를 302억원에 사들였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나머지 700억원 규모의 주식은 추후 별도 방법으로 매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산 것은 투자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가 실패하면 겪게 될 어려움과 기존 주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 3000억원 한도로 일반 공모에 청약하겠다”고 말했다. 기존 주주가 아니었던 이 부회장은 이달 초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주배정 유상증자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남은 물량이 없어져 공모에 참여하지 못했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최근 1조256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데 이어 자사주까지 매각해 경영 안정성이 높아지고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올해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올해 수주 6조원, 매출 7조600억원, 영업이익 2280억원 달성을 목표로 잡고 있다.

정소람/김현석/도병욱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