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창업해 액정·계산기·전자사전·전자레인지 생산
액정과잉설비와 가격하락으로 경영난…해외생산 전환타이밍 놓쳐


대만 폭스콘에 넘어간 샤프사는 하야카와 도쿠지(早川德次)가 1912년 도쿄(東京)에서 창업한 기업이다.

허리띠의 버클을 발명한 것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이후 금속제 연필인 에버 샤프 펜슬(Eversharp Pencil)을 발명, 미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샤프라는 사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때 공장이 소실돼 오사카(大阪)로 옮겨 하야카와전기를 설립, 재기에 나서 종합가전메이커로 발전했다.

1925년 광석라디오(전원을 사용하지 않는 단순한 방식의 라디오)를 샤프라는 브랜드로 발매, 주력상품으로 키웠다.

2차대전 후에는 마쓰시타(松下)전기산업과 소니가 등장하면서 영업과 판매력에서 뒤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53년 TV를 생산했으며 1962년 일본 가전업계 최초의 전자레인지, 1966년 세계 최초의 턴 테이블식 전자레인지를 발매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1963년 태양전지 양산을 시작했으며 태양전지 분야에서는 지금도 세계시장 점유율 2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964년 올 트랜지스터 다이오드를 이용한 전자계산기를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이후 카시오와의 경쟁이 가속화되자 계산기의 표시부품인 액정기술 개발에 착수, 1973년 액정표시장치를 이용한 CMOS화 계산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며 이 경험을 토대로 후일 '액정의 샤프'로 불리며 오늘날의 샤프로 자리 잡았다.

액정 외에 팩시밀리, 전자사전, 전자 레인지, 계산기, 액정 TV AQUOS, 여기서 발전한 AQUOS 휴대전화 등의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1970년 1월1일부터 샤프라는 현재의 사명으로 상호를 바꿨지만 하야카와전기 시대의 상징인 타원형의 샤프 마크는 지금도 회사의 공식 문양으로 쓰고 있다.

샤프는 "선진적인 부품을 개발, 그 부품을 토대로 특징적인 상품을 생산하고", "상품에 사용함으로써 부품의 목표가 명확해지고 성능이 향상되는" 순환구조인 '스파이럴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여기에 다른 회사에는 없는 부품과 제품을 만들어내는 '온리 원'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

양쪽으로 여는 냉장고와 플라스마 클러스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샤프는 세계 30여개국에 지사를 운영하며 164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종합전기메이커로 성장했다.

하지만 집중적으로 투자한 액정사업 성공에 역설적으로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액정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마쓰시타(파나소닉)진영의 플라스마 디스플레이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매출액이 비약적으로 늘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자 자만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사내에서 액정사업에 시비를 거는 일이 터부시되면서 액정에 올인하는 바람에 그때까지의 무차입경영 정책을 내던지고 부채를 끌어쓰기 시작했다.

이후 경영진의 내분, 전략실패, 경제위기 등이 그대로 경영위기로 이어졌다.

샤프의 2대 사장인 사에키 아키라(佐伯旭) 일족이 실권을 거머쥔 가운데 기술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해 성과가 나면 동시에 영업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액정TV나 태양전지 등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사업은 감가상각 후의 이익으로 투자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샤프는 새로운 것을 만든 후 후속작업이 이뤄지 않아 경영실패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샤프의 위기는 2006년 8월 월 3만장(1장은 40인치 8장분) 규모의 8세대 대형액정을 생산하는 가메야마(龜山) 제2공장(2012년 8월 현재 가동률 30%) 건설에서부터 비롯됐다.

후지모리(藤森裕司) 골드만 삭스 애널리스트는 2010년 "가메야마 제2공장을 건설하는 바람에 과잉생산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세계시장을 살피면서 해외생산에 과감히 나서야 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잘못 판단하고 국내 생산에 매달린 것도 경영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2008년에 기록적인 1천20억엔(약 1조200억원)의 순이익과 3조4천177억엔(약 34조1천770억원)의 연결매출을 올린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이후 액정패널 값이 폭락하고 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액정 TV 및 패널가격 속락, 엔화강세, 금융위기에 이은 전기제품 수요감소 등이 겹치면서 이듬해인 2009년 1천258억엔(약 1조2천5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상장 이래 첫 적자였다.

경영난이 계속되면서 2012년 대만 폭스콘과 제휴, 사카이(堺)공장의 액정패널, 모듈 지분 50%를 넘기고 그해 7월 폭스콘 측이 사카이 공장의 대표이사를 차지하며 주도권을 잡았다.

이후에도 경영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창업 104년 만에 결국 폭스콘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lhy501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