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트립어드바이저 CEO 스티브 카우퍼…불편한 여행 경험이 '돈' 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필시 여드름 난 외톨이 청년을 떠올리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1980년 하버드대에 입학한 스티브 카우퍼는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인물이었다. 펜싱팀에서 주장까지 맡아 할 정도로 스포츠를 사랑했다.

그는 또 여행을 좋아했다. 1998년엔 멕시코에 가기로 했는데 너무나 많은 호텔 소개 글이 있었지만 전부 홍보 성격이 짙었다. 제대로 된, 공정한 평가를 찾을 수가 없었다. 고생 끝에 비교적 공정한 글을 발견했고 좋은 호텔에 묵기는 했지만 시간과 에너지 낭비가 컸다.

아내의 권유로 시작된 창업

여행정보 사이트를 만들라고 권유한 사람은 200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 캐럴라인 립슨 카우퍼였다. 캐럴라인은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은 당신 혼자가 아니다”고 일깨웠다. 공정한 평가를 담은 여행정보 사이트를 만들면 대박이 날 것 같았다. 닷컴 거품이 한창이던 때였다. 2000년 랭글리 스타이너트 등 몇몇 친구와 함께 ‘트립어드바이저닷컴’이라는 사이트를 열었다.

처음에는 특정 장소에 대해 가이드북에 나온 자료, 신문에 나온 기사, 잡지에 나온 글 등을 모아서 실었다. 공정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전문가의 편파적이지 않은 글을 모아두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의 기능을 추가했다.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었다. 카우퍼는 당시 그 기능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소비자들의 평가글 수가 신문·잡지·책에 소개된 소위 ‘전문가 평가’ 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사이트의 성격이 달라졌다. 여행 정보에 대해 소비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는 판이 형성됐다. 그는 여기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싹을 봤다.

부침 심한 IT업계에서 16년째 CEO

미국 매사추세츠주 니덤에 본사를 둔 트립어드바이저는 세계 최대 여행정보 업체다. 닷컴 거품을 타고 태어난 그저 그런 벤처기업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이 회사는 ‘사용자 경험 공유’라는 신세계에서 노다지를 찾아냈다. 트립어드바이저 회원 수는 6000만명에 이르고, 이들이 호텔과 식당 등 여행지와 관련해 올린 평가 수는 1억7000만개를 넘는다.

이 회사는 또 25개 하위 여행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항공요금 비교사이트 에어페어워치독, 크루즈 전문 사이트 크루즈크리틱, 가족여행 전문 사이트 패밀리배케이션크리틱 등 수요자 맞춤형 브랜드들이다.

회사를 여기까지 키운 것은 창업자 카우퍼다. 그는 전문경영인을 따로 두지 않고 스스로 수많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 현재의 자리에 서게 했다. 그가 직장인 전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링크트인에 올린 프로필은 한 줄뿐이다. 2000년 2월부터 트립어드바이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만 16년이다. 38세에 창업해서 벌써 54세가 됐다. 기업이 한순간에 떴다가 사라지고, 경영자 교체도 잦은 정보기술(IT) 업계에서, 특히 경쟁이 심한 정보제공 사이트 운영자로서 이만큼 오래 장수한 CEO는 드물다.

“주가 보지 않으려 노력”

트립어드바이저는 2011년 상장했다. 상장 첫날 주가는 29달러였다. 2014년에는 한때 110달러를 넘기도 했다. 현재 주가는 60달러대 초반이다. 그는 주가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는 CEO이기도 하다. 그는 베타보스턴과의 인터뷰에서 “내부 회의를 할 때 주가 그래프를 제시하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가가 얼마인지도 잘 모른다. “누가 나타나서 ‘스티브, 어제 주가가 90달러를 넘었어!’라고 외치면 ‘잘 모르겠고 별 관심 없어’라고 대답하곤 한다”고 그는 자신을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립어드바이저는 상장업체로서 주주들과 분기마다 만나 실적을 보고해야 한다. 카우퍼는 “주주들이 얼마의 이익률을 목표로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이익률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다만 사업을 키우고자 할 뿐이라고 답한다”며 “사실 우리는 예측하기 어려운 종류의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점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익을 소홀히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인생의 전환시기로 트립어드바이저가 흑자가 나도록 하는 방법을 깨달았던 2004년과 상장을 했던 2011년을 꼽는다. 다만 주주만을 신경쓰느라 사업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경쟁자에게서 배우는 ‘열린 태도’

트립어드바이저 같은 여행정보 업체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새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소 공유 사이트가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카우퍼 스스로도 에어비앤비를 크게 의식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종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묵으려면 하루에 300달러씩 내고 호텔에서 자야 했지만 이제는 남는 방에서 50달러를 내고 묵을 수 있다”며 “에어비앤비가 만든 생태계는 상당히 멋지다”고 평가했다.

그는 “종전에는 집을 빌리려면 중개업자를 통해 하룻밤에 200~500달러를 내야 하고, 수표를 발행해 우편으로 보내야 하고, 깔개 밑에 열쇠가 약속대로 있을지 없을지 불안해해야 했다”며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에어비앤비는 ‘신뢰 공동체’를 조성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도전에 전통 모델로 승부할 계획이 없었다. 에어비앤비와 비슷한 ‘홈어웨이’ 사이트를 개설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경쟁은 만만치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광고 및 가입자 증가로 트립어드바이저의 지난해 매출이 7.3% 늘었지만 순이익은 3600억달러에서 300억달러로 급격히 줄었다고 지난 11일 보도했다.

“나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

카우퍼는 끊임없는 M&A로 회사를 키웠다. 그는 앞으로도 그런 방식을 고수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 내가 오늘 돈을 써서 내일 그게 나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것을 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지난달 보스턴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는 단어를 3개만 대 보라는 질문에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driven) 점’을 가장 먼저 댔다. 그리고 5일이나 지나서 보스턴글로브에 ‘호기심이 많고(curious)’, ‘집중하는(focused)’이라는 두 개를 더 알려줬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트립어드바이저를 “완벽한 여행을 계획하게 해주는 회사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강력한 경쟁자들이 많지만 자신은 어떻게든 뚫고 나갈 것이라는 자신감을 비친 것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