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은행들의 실적이 심상치 않다.

영국계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SC)가 26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은행들의 실적이 크게 악화하고 있다.

전 세계 경기 둔화와 유가 폭락, 각국 중앙은행들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등으로 은행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유가 하락으로 원유와 가스 관련 업체들의 대출 손실이 악화할 것이라는 점은 부담이다.

◇ 유럽 은행들 실적 줄줄이 악화…美 은행은 개선
최근 실적을 발표한 은행 중 유난히 실적이 악화한 것으로 드러난 은행들은 주로 유럽계 은행들이다.

특히, 유럽계 은행들은 앞선 도이체방크의 실적 악화와 코코본드 이자 미지급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이 촉발되며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5일 국제금융업계에 따르면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은 작년 전체 세전 손실액이 15억 달러에 달해 1989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순손실을 기록했다.

은행은 원자재 가격 하락과 인도 금융 시장 악화로 악성 대출이 87% 늘어난 4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고 말했다.

영국 최대은행인 HSBC도 작년 4분기에 13억3천만 달러 순손실을 기록했다.

세전 손실액은 8억5천만 달러에 달했으며, 작년 전체 세전 이익은 189억 달러로 전년 대비 1%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탈리아 최대은행인 유니크레디트는 작년 전체 순이익이 15% 하락한 17억 유로를, 4분기 순익은 10% 줄어든 1억5천300만 유로를 각각 나타냈다.

유럽 은행들은 재정위기 이후 부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가 부진해지자 일부 재정 취약국을 중심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부실채권인 무수익여신(NPL) 비율이 높은 이탈리아 은행권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탈리아 은행들의 총 NPL은 3천300억 유로로, 전체 대출의 17.6%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탈리아 최대은행인 유니크레디트의 NPL도 15.4%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반면, 미국계 은행들의 실적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이번 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4분기 6천182개 미국 상업 은행들의 4분기 순이익은 408억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11.9% 늘었다.

NIM은 3.13%를 기록해 5년여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를 나타냈다.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회복세를 보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작년 말에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도 실적 개선에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은행권의 경우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지난주 한국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2조5천억 원 줄어든 3조5천억 원에 그쳤다.

저금리로 순이자마진이 감소한 데다 부실 대기업과 관련해 일부 은행들이 대손 비용을 처리하면서 4분기 순익이 적자로 돌아선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수익성 지표인 NIM은 2014년 대비 0.21%포인트 하락한 1.58%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 경기 둔화ㆍ저금리ㆍ유가 하락 삼중고
은행들의 수익이 악화한 것은 전 세계 경기가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악화하면 기업들의 투자가 줄고 대출이 줄어든다.

그나마 받아뒀던 대출도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은행은 대표적인 경기 민감주다.

손은정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부실한 기업이 문제가 되면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입장이다 보니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다"며 "이 때문에 경기가 둔화하면 실적이 악화한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들의 저금리 정책으로 이미 만성적인 수익 부진에 시달려왔다.

특히, 2014년 유럽중앙은행(ECB)이 예치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리고, 올해 일본은행(BOJ)마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하면서 은행들의 수익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유럽 지역의 25대 은행들의 NIM은 작년 3분기 1.5%에서 4분기 1.4%로 하락했다.

이는 미국의 3.13%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한국 역시 1.58% 수준으로 유럽과 비슷하다.

모건스탠리는 ECB가 예치금리를 0.10%포인트 추가 인하할 경우 은행 수익이 5~10%가량 하락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대형은행들의 순익은 0.78%, 지역은행은 0.29% 각각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유럽팀장은 "당국의 마이너스 금리 채택으로 은행이 경제적 손실을 받고 있다"라며 "금리 인하로 인한 순이자마진이 줄면서 은행들의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유가 하락도 은행들의 실적 악화에 한 몫하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석유 가스 관련 기업들이 부실화되면 이는 고스란히 은행들의 부실채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S&P는 올해 들어 전 세계 석유 가스 기업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건수가 19개로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이중 미국에서 17건, 신흥시장에서 1건, 다른 선진국에서 1건이 발생했다.

작년에도 석유 가스 기업의 디폴트는 113건으로 금융위기 이후 최대를 기록한 바 있다.

이번 주 JP모건은 에너지 부문의 대손충당금을 작년 말보다 5억 달러 늘렸다고 발표했다.

유가 하락으로 에너지 부문의 부실이 늘어날 때를 대비한 것이다.

JP모건의 에너지 부문 대출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총 440억 달러로 은행은 유가가 배럴당 25달러 근처에서 1년 반 동안 유지될 경우 충당금이 15억 달러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보다 유럽의 에너지 부문 익스포저가 더 큰 것으로 추정된다.

BNP파리바에 따르면 유럽 은행들의 에너지 부문 총 익스포저는 4천억 유로 정도다.

이 중 5분의 1은 정크 등급으로 해당 채권이 디폴트에 빠질 경우 손실액은 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연준에 따르면 미국 은행권의 석유 가스 부문 총대출은 작년 말 기준 2천765억 달러로 이 중 15%인 340억 달러가 손실 가능성이 있는 '위험 등급'이다.

작년 12월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정크등급의 에너지 채권 중 절반가량이 부실한 상태로 디폴트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금액으로는 약 1천800억 달러 가량이다.

전망도 밝지 않다.

손은정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마이너스 금리로 수익 기반 자체가 악화할 수 있으며, 이탈리아 은행들은 부실 채권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이자수익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서 금리가 더 떨어지면 수익성은 더 악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위대 유럽팀장도 "유가 하락으로 유럽 은행들의 3월 결산에 원유 관련 부실이 반영되면 결산공고 시점에 상당한 충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영숙 기자 ysy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