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금융중심지 '시티'가 브렉시트를 놓고 찬반 양론으로 갈라져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23일 보도했다.

미국 은행 JP모건의 제이메 다이먼 CEO(최고경영자)는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브렉시트가 이뤄진다면 지난 수십년간 시티가 키워놓은 금융 허브의 기반이 와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런던에 자리잡은 은행들은 더 이상 유럽연합(EU) 지역에서 영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국제적 은행들이 유럽이나 다른 대륙으로 흩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JP모건도 런던 사업부를 축소하고 타지역으로 옮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티는 1990년대말 영국의 EU 참여를 놓고 이번과 비슷한 각종 경고들을 들어본 바 있다.

런던 국제금융선물옵션거래소의 전임 회장인 안드레 빌뇌브는 당시의 경험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빌뇌브 전 회장은 "그들은 영국이 EU의 일원이 되지 않으면 시티는 죽고 프랑크푸르트가 득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시티는 오히려 번영을 구가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잘 버텨냈다.

브렉시트를 가름할 국민투표를 4개월 앞둔 시티는 요즘 또다시 논쟁에 휘말려 있다.

탈퇴가 몰고 올 충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드높지만 이런 경고에 근거가 없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소규모 금융회사들과 여기에 오랫동안 몸담은 사람들은 대체로 영국이 EU를 떠나기를 원하는 듯하다.

하지만 규모가 크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금융회사들은 압도적으로 잔류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린치(BOAML)의 유럽본부장인 알랙스 윌모트 시트웰은 "현재 런던에서 이뤄지는 금융거래의 상당 부분이 이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루 아침에 벌어질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EU 각지로 분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시티가 EU의 관료주의라는 굴레를 벗어난다면 지속적으로 번영을 구가할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쇼어 캐피털 그룹의 하워드 쇼어 회장은 "유럽 밖에 있다면 유럽의 규제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업은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0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금융회사들이 시티를 대거 이탈한다면 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시티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야말로 경쟁도시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미국 뉴욕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를 놓고 오랫 동안 시티와 다퉈왔다.

프랑크푸르트와 더블린은 유럽의 비즈니스 허브 자리를 노리고 있고 싱가프로와 홍콩, 도쿄는 반사이익을 기대한다.

몇몇 금융 전문가들은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시티 뿐만 아니라 EU 전체의 금융업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다.

독일 노르트 은행의 귄터 둔켈 CEO는 은행들과 금융회사들이 유럽 밖으로 빠져나가면 유럽 모두가 패자로 전락하고 아시아 경쟁도시들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프랑크푸르트가 시티의 일부 금융회사들을 유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욱 분열된 유럽은 더욱 약해지는 것을 뜻한다는 의견이다.

시티는 외화 거래, 다시 말해서 유로화 거래의 중심이 되면서 강력한 입지를 더욱 다졌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일제히 시티의 사업 기반을 확장했고 다수의 보험회사들이 시티에 유럽본부를 차렸다.

새로운 시장도 조성되면서 시티는 1조 유로에 달하는 국제적 펀드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이는 5∼6년전 규모보다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시티의 금융회사들에 고용된 사람들의 11%에 해당하는 3만8천여명이 EU 회원국 출신이고 미국 은행들은 유럽 단일시장을 무대로 한 사업을 목적으로 시티에 9천996억 파운드의 자산을 쌓아두고 있다.

유럽 대륙을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이 이토록 지대한 만큼 시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과반은 브렉시트를 엄청난 자책골로 보고 있다.

특히 은행들이 EU잔류를 열렬히 지지하는 경향이다.

골드만 삭스는 EU잔류 지지 캠페인에 50만 달러를 지원했고 다른 대형 미국 은행들도 이를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다수의 헤지펀드와 중소 증권사들은 탈퇴가 낫다고 보고 있다.

헤지펀드인 오디 애셋 매니지먼트의 창업자 크리스핀 오디는 "유럽은 시티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프랑스와 독일은 늘 시티의 성공을 질투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은 우리를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는 제국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덩치가 상대적으로 작은 헤지펀드들의 상당수는 투명 경영을 취지로 도입된 EU의 각종 규제에 불만이 많다.

특히 보너스 규제는 시티에서 압도적으로 평판이 좋지 않다.

어느 쪽에 투표할지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아이캡 증권사의 마이클 스펜서 CEO는 "브렉시트가 리스크 요인이 되겠지만 우리를 우스꽝스런 보너스 상한선과 기타 규제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 펀드 매니저인 닐 우드포드 같은 일부 EU 탈퇴론자들은 시티가 영국의 시간대, 영국법, 교육 등과 같은 많은 혜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UBS 웰스 매니지먼트 영국 투자사무소의 빌 오닐 소장은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축소된다고 주장했다.

영국 출신의 EU 금융규제 담당 집행위원인 로드 힐은 유럽의 자본시장 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기업들이 국내 은행에 의존하지 않고 쉽게, 저렴한 비용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는 만큼 영국에 큰 기회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빌뇌브 런던 국제금융선물옵션거래소의 전임 회장은 1999년 영국이 유로존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단 하나의 실질적 손실을 보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독일 국채 선물의 거래를 프랑크푸르트에 빼앗겼다는 것이다.

빌뇌브는 그러나 이번에 만일 영국이 EU 블록을 떠난다면 피해를 이 정도로 제한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도 경고들을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js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