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켈틱 호랑이’ 아일랜드에서 한때 대영 무장 투쟁을 이끌었던 아일랜드공화국군(IRA) 관련 조직(신페인당)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2010년 말 유럽연합(EU) 등의 구제금융을 받은 뒤 5년 넘게 이어져온 긴축 정책에 짜증이 난 유권자를 중심으로 급진 좌파에 속하는 이 정당의 지지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서다.
'아일랜드의 역설'…긴축으로 경제 살렸지만 민심은 집권당 외면
2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오는 26일 치러지는 아일랜드 총선에서 신페인당이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1야당과 연정해 집권하고 있는 여당(통일아일랜드당)의 연정을 무너뜨리고, 경제정책을 긴축에서 확장으로 180도 바꿔놓을 수 있어서다.

아일랜드는 2011년 3월 조기 총선을 통해 엔다 케니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통일아일랜드당(당시 제1야당)이 집권했다. 전체 하원 166석 중 76석(지지율 36.1%)을 차지하고 있다.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37석(19.4%)을 차지한 노동당과 연정을 이뤄 긴축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노동당 지지율은 현재 6%까지 추락(아이리시타임스 지난 19~20일 여론조사 결과)했다. 노동당과의 연정이 깨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통일아일랜드당은 아슬아슬하게 1위 자리(지지율 28%)를 지키고 있지만 2위 자리를 놓고 공화당과 신페인당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공화당과 연정하면 현재와 비슷한 경제정책이 예상되지만 공화당은 2위(제1야당)가 되더라도 통일아일랜드당과 연정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긴축을 반대해 지지율을 높여온 신페인당이 2위가 되면 연정을 하든 하지 않든 정책 변화가 불가피하다. 신페인당 지지율은 2011년 9.94%에서 최근 20%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아일랜드는 유럽의 구제금융 4개국(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가운데 가장 ‘모범생’이다. 2013년 12월 가장 먼저 구제금융 체제를 졸업했고, 2009년 국내총생산(GDP)의 12%에 이르던 재정적자는 올해 거의 0%로 줄어들 전망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아일랜드의 성장률이 6.9%였다고 추산했다. 중국의 공식 성장률과 같다. EU 전체 성장률은 1.9%였다.

EU 집행위는 올해 아일랜드 성장률이 4.5%, 내년엔 3.5%로 다소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도 여전히 유럽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될 전망이다.

고통을 나누는 적극적 긴축정책이 효과를 봤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세계 최저 수준(6.25~12.5%)의 법인세율로 다국적 기업을 불러모아서 세수를 늘린 것도 주효했다.

하지만 민심은 정치에 등을 돌리고 있다. 한때 15%에 달하던 실업률이 8.5%까지 떨어졌지만 긴축정책 때문에 복지 등이 후퇴했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2014년 정부가 수도세를 도입하려다가 대규모 시위가 촉발된 것이 단적인 예다.

IRA 투쟁을 주도했던 신페인당은 정부가 부자들만 살찌운다고 비난하며 민심을 자극했다.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등 유럽의 다른 포퓰리즘 정당과 비슷한 전략이다.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지만 지난 6년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캐롤라인 데블린은 FT에 “나는 일평생 투표한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신페인당에 표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가 IRA 투쟁이 본격화한 1916년 ‘부활절 봉기’의 100주년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강성 국가주의 성향의 신페인당이 제1야당이 되면 영국과의 외교관계가 악화할 가능성도 높다. IRA는 2000년대 들어서야 무장 투쟁노선을 공식 폐기했다. FT는 IRA 투쟁을 하면서 총상을 입었던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대표에 대해 “그 자체로 분열적인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