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추경편성 계획까지 미리 세워 정책적시성 확보해야"

세종팀 =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갈수록 비우호적인 요소들로 채워지고 있다.

연초 한국 경제의 하방 위험으로 주목된 'G2(미국·중국) 리스크' 외에 경기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본과 유로존까지 가세해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모양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로 증폭된 북한발 리스크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의로 번지면서 우리 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한층 커졌다.

국제유가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출현한 지카(Zika) 바이러스는 글로벌 소비 시장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수출 중심인 우리 경제에는 역시 부담이다.

정부는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고자 미니 부양책을 연달아 내놨지만 대내외 악재 때문에 효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입법 작업에 매진해야 할 국회는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 때문에 경제 관련 주요 법안들을 뒷전으로 미뤄놓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까지 내다보고 대응계획을 미리 짜서 경제정책 실행의 적시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수출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G2에서 G4로…규모가 커지는 리스크

올해 초 한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미국과 중국을 가리키는 이른바 G2 리스크가 꼽혔다.

작년 말 미국이 9년여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하면서 자본유출, 신흥국 불안 확산 등과 같은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연초 들어서는 중국의 작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9%를 기록, 연간성장률로 1990년(3.8%) 이후 25년 만에 7% 이상 달성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큰 충격을 줬다.

미국과 중국 경기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나오고 있고 중국의 1월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1.2%나 감소하며 경착륙 가능성이 제기되는 형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에서 3.0%로 낮추면서 미국 성장전망도 기존보다 0.5%포인트 하향조정한 2%로 제시했다.

올해 중국 성장률 전망치는 6.5%로, 2년 연속 7% 달성에 실패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일본과 유로존도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 카드를 내놓은 지 얼마 안 돼 작년 4분기 GDP가 0.4% 감소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유로존에서는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0%대에 머물고 있고 경기 부진도 여전하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일본도 상상하지 못했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펴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유럽도 어렵다"고 진단하면서 "G2 리스크가 아닌 G4 리스크가 가장 큰 위험요소"라고 말했다.

G4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원유 등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신흥국에 이어 선진국까지 경기침체의 늪에 빠지게 된다.

수출에 기대고 있는 한국 경제는 한층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北 리스크 장기화 우려…금리·유가 전망도 '안갯속'

설상가상으로 북한이 연초 4차 핵실험을 단행한 데 이어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정부의 정책적 우선 순위가 경제에서 안보로 옮겨지는 상황이 됐다.

현실적으로 경제는 삶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소이지만 안보는 생사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논의에 대해 중국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한반도에는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신(新) 냉전기류까지 형성되고 있다.

이 같은 신 냉전기류는 1992년 수교 이후에 경제적 밀월관계를 발전시켜온 한중 간에 틈을 벌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일각에선 우리 정부가 중국의 반대를 물리치고 사드 배치를 강행할 경우 중국 쪽에서 비관세 장벽 등을 동원해 경협 관계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으로 세계무역 규범을 지켜야 하는 중국이 안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의 경협 관계를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중국 정부가 다양한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무리한 조치에 나선다면 대(對) 중국 수출 의존도가 25%를 넘는 한국 경제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중국은 2012년 일본이 동중국해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열도) 근해에서 순시선과 충돌한 중국 어선 선장을 구속하자 스마트폰에 쓰는 희귀자원인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는 경제 보복을 가한 전례가 있다.

또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2010년 중국 반체제인사인 류샤오보에게 노벨상을 주자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제한하기도 했다.

2000년엔 한중 간 '마늘 파동'이 있었다.

우리 정부가 중국산 냉동 및 초산 마늘에 매기는 관세율을 올리자 중국은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 중단했던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관련한 불확실성도 커져 한국 경제를 둘러싼 안개가 한층 짙어졌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 3월께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그 시기가 더 늦춰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달 정례회의에서 연준이 미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산유국들이 생산량 제한과 관련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바닥 모르고 추락해 온 국제유가의 향방은 여전히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해 여름올림픽 개최를 앞둔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지역에서 퍼지는 지카 바이러스는 가뜩이나 침체한 세계 경제의 시름을 키누는 요인이다.

◇ 정치권 관심은 오로지 총선에…"경제정책 적시성 확보해야"

정책 당국은 경제 회복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미니 부양책을 잇따라 내놓고 비상사태 발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일 1분기(1∼3월)에 재정 조기 집행액을 21조원 이상 늘리고 승용차 개별소비세를 인하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부양 카드를 꺼내 들었다.

17일에는 양재·우면 지역에 연구·개발(R&D) 집적단지를 세우는 등 6조2천억원의 투자를 유도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한국판 '에어비앤비'를 합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투자 활성화 대책도 내놨다.

그러나 경기를 확실히 띄우는 데 쓸 카드가 현재로선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다.

추경 카드는 재정 적자를 늘리고 국민의 세금부담을 키운다는 점 때문에 섣불리 꺼내들기 어렵다.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은 1천200조원대가 된 가계부채 때문에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통제할 수 없는 대외 악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는 단기 부양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경제활성화법안의 국회 통과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관심은 오로지 공천 경쟁에 쏠린 모양새다.

이런 분위기 속에 2월 임시국회가 속빈강정 식으로 진행된다면 정부가 요구한 법안 처리는 19대 국회에서 물건너 가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 가능성을 높이려면 확장적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모든 형태의 상황 악화에 대비한 '플랜B(컨틴전시 플랜)'를 미리 마련해 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담스럽지만 추경 계획도 완전히 배제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세계 경제 회복의 주체인 미국 경제를 활용하기 위한 미국 시장 진출 확대방안을 마련하고 중국에서 급성장하는 시장에 대한 수요를 파악해 새로운 수출 확대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회복 속도가 예상 수준보다 크게 밑돌 경우를 대비해 사전적으로 추경편성 계획을 세워 실제로 필요한 상황이 오면 바로 집행할 수 있는 경제정책의 적시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연합뉴스) porqu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