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섭 삼덕통상 회장이 생산라인에서 신발을 점검하고 있다.
문창섭 삼덕통상 회장이 생산라인에서 신발을 점검하고 있다.
신발 제조 전문업체 삼덕통상의 문창섭 회장(사진)은 2005년께 고민에 빠졌다. 국내외 유명 브랜드가 주문하는 대로 생산만 해주면 미래가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10년 뒤를 생각하면 더 답답했다. 신발산업은 사양산업이라며 인재들이 오지 않았다. 현장이 고령화되면 경쟁력은 더 떨어질 게 뻔했다.

문 회장은 “생존을 위해 단순 제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해 개발 제조 서비스까지 해주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단순 생산과 달리 ODM은 대규모 연구개발 인력을 필요로 한다. 이때부터 늘려온 연구개발 인력은 현재 80여명에 이른다.

◆인재 투자로 10년 뒤 준비

문 회장은 “10개팀이 브랜드 특성에 맞는 별도의 연구개발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는 삼덕통상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기반으로 삼덕통상은 국내외 유명 브랜드에 납품하는 업계 선두주자로 성장했다.

문 회장은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기업은 시작도 끝도 사람”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젊은 인재들을 신발산업으로 끌어오기 위해 부산지역에 있는 신발특성화고등학교 졸업생들을 채용했다. 부산지역 대학교와 양해각서를 맺고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현장에서 학위를 주는 제도도 도입했다.

사원들에게 임대아파트를 얻어준 것은 기본이었다. 다른 회사들은 이런 삼덕통상에 대해 “사람에게 무섭게 투자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목적은 장인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신발 전문가를 육성해 이탈리아 업체들처럼 장인이 넘쳐나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 회장은 “연구개발 투자가 지난 20년간 성장의 원동력이었다면 사람에 대한 투자는 10년 뒤 한국의 신발산업을 명품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덕통상이 성장한 중요한 계기는 개성공단 입주였다. 2005년 입주한 이후 부산 공장 및 연구소와 시너지를 내며 매출이 급증했다.

최근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삼덕통상은 사업을 크게 한 만큼 큰 피해를 봤다. 하지만 문 회장은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기업인에게 위기는 언제나 찾아오는 것”이라며 “인상 찌푸린다고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어 “기업인은 어떤 상황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생존 비결은 품질과 신뢰”

1997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 설립을 결정하자마자 외환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어려웠다. 다들 포기하자고 했지만 문 회장은 “기업은 품질과 원가경쟁력, 그리고 신뢰 세 가지만 있으면 생존할 수 있다”며 밀어붙였다.

문 회장은 최근 13대 신발산업협회장으로 추대됐다. 그는 “현재 신발산업은 2조4000억원 규모에 달하고, 2만2000여명이 일하고 있을 정도로 고용 효과가 크다”며 “이 산업을 키워 한국을 신발 강국으로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발산업의 가장 큰 문제로는 10인 미만 업체가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영세성을 꼽았다. 따라서 2900개 신발업체가 저가수주에 매달리지 않고, 연구개발을 통해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그의 목표다.

문 회장은 “그동안 신발업체들은 각개약진했지만 지금은 정부와 업계가 힘을 합쳐 한국을 명품신발의 제조기지로 육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협력업체, 연구개발 인력 등 각종 인프라를 구축해 한국에 오면 최고의 신발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세계에 심어주겠다는 얘기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