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자·정보기술(IT) 기업들이 기업 간 거래(B2B) 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각종 IT 기기와 소프트웨어, 솔루션 등을 묶어서 파는 B2B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데다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와 달리 한 번 거래처를 개척하면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신뢰성이 관건인 이 시장에선 아직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도 큰 힘을 못 쓰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도 최근 B2B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불황에도 매출 안정"…B2B로 몰리는 IT기업들
◆삼성·LG 등 B2B 사업 집중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올해 스마트폰 TV 메모리 등 주력 시장에서 공급 과잉과 가격 경쟁이 심해질 것”이라며 “B2B와 콘텐츠 서비스 등 신사업으로 수익성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B2B 브랜드인 ‘삼성 비즈니스(SAMSUNG BUSINESS)’를 출범시키고 B2B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줄어드는 스마트폰, TV 매출을 교육 유통 호텔 물류 의료 등 B2B 시장을 공략해 보완하려는 의도다. 지난달엔 전장사업팀을 신설해 스마트카 부품 개발에 돌입했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유럽 크루즈 선사 ‘MSC 크루즈’에 TV와 스마트폰, 가상현실(VR)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 의료기기, 프린터 등을 한꺼번에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객실 TV와 선내 디지털 사이니지, 의무실에 배치할 의료기기, 승무원 업무용 모바일 기기 등을 납품하는 것이다.

전기차 부품, 에너지 등 B2B 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LG그룹은 지난해 말 파나소닉 히타치와 비슷한 구조로 조직을 개편했다. 효율적인 B2B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주)LG에 신성장사업추진단을 신설했다.

LG는 GM과 전기차 볼트에 11종의 핵심부품을 공급하기로 계약했고, 세계 최고 효율의 태양광 패널을 앞세워 에너지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LG 관계자는 “구본준 부회장을 그룹 신사업추진단장에 임명한 것도 빠른 체질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도 아이폰 성장 정체를 B2B 사업으로 극복한다는 계획이다. IBM과 기업용 앱(응용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하고 시스코 등 40개 이상의 IT 기업과 사업 협력을 맺었다. 팀 쿡 CEO는 지난해 9월 “지난 1년 동안 B2B 분야에서 25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며 “B2B 사업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전자상거래 포털 알리바바도 지난해 11월 B2B 플랫폼 ‘훌세일러(Wholesaler)’ 문을 열고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업 강화에 나섰다.

◆기사회생한 히타치·파나소닉

B2B 시장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B2C 기업은 일본의 파나소닉과 히타치다. 파나소닉은 2011~2012년 매년 7000억엔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히타치도 2008년에 일본 제조업체 사상 최대 규모인 7873억엔의 적자를 냈다.

이들은 B2B시장에서 극적으로 회생했다. 파나소닉은 TV 사업 등을 정리하고 자동차 도시 항공 등 B2B 시장에 집중해 2014년 영업이익률 5%를 기록했다. 히타치는 디스플레이 TV PC 사업 등을 정리했다. 대신 전력, 정보통신, 철도 사업에 뛰어들어 2013년 2649억엔, 2014년 2413억엔의 흑자를 이뤄냈다.

업계 관계자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B2C 시장과는 달리 B2B 시장은 고객을 확보하기 어렵지만, 일단 거래가 시작되면 상당 규모의 물량과 연관 제품까지 판매할 수 있다”며 “특히 거래 기업이 성공하면 덩달아 매출이 커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태국에서 소비자에게 태블릿을 팔려면 현지인이 좋아하는 제품을 개발해 광고하고 유통업체를 상대로 영업해야 한다. 하지만 태국 교육부에 교육기자재로 판다면 한 번에 수만대를 공급할 수 있고 교육용 소프트웨어 등도 묶어 팔 수 있다.

이처럼 B2B 시장에선 혁신적인 제품보다는 그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곳에 적합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컨설팅업계에 따르면 세계 100대 기업 중 B2B 기업은 27개지만 매출로 보면 이들 기업이 61%를 차지한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