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은둔자' 래리 페이지의 못말리는 '기술집착'
래리 페이지 알파벳(구글 지주회사) 최고경영자(CEO)는 2013년 이후 대외적인 행사에서 모습을 감췄다.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도, 구글이 매년 개최하는 중요 행사인 구글IO(개발자 회의)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페이지를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전문가 대상으로 열리는 각종 기술 콘퍼런스다. 뉴욕타임스(NYT)는 “페이지가 대중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일반적인 ‘은둔형 경영자’와는 다르다”며 “로봇공학 콘퍼런스나 TED 같은 강연회에는 정기적으로 참석한다”고 최근 보도했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에 대한 끝없는 집착이 구글의 성공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 CEO답지 않은 수수한 차림에 콘퍼런스 참석자들은 그를 못 알아보는 때도 많다. 구글이 주최한 행사에서 페이지를 만난 찰스 체이스 록히드마틴 핵융합프로그램 엔지니어는 “한 남성이 핵융합으로 어떻게 깨끗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지 등을 물어와 20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며 “나중에 이름을 묻고서야 그가 구글 창업자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구글이 주최한 행사든, 외부 행사든 페이지는 강단에 올라 축사나 강연을 하는 일도 없다. 일반 참석자와 토론을 벌이고, 전문가를 붙들고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질문을 던질 뿐이다.

NYT는 미시간주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이던 아버지(칼 빈센트 페이지)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페이지가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선 2013년 구글IO에서 “아버지는 기술에 정말 관심이 많았다”며 “어린 나에게도 앞선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열리는 로봇 콘퍼런스에 데리고 다녔다”고 회고했다. 어머니 글로리아 역시 미시간대 컴퓨터공학과 강사였기 때문에 페이지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과학기술 잡지에 둘러싸인 채 자랐다.

6세 때부터 컴퓨터에 푹 빠진 페이지는 아버지 모교인 미시간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스탠퍼드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당시에도 자율주행차량과 인터넷 검색기술 개선법 등 연구 아이디어를 잔뜩 들고와 지도교수 테리 위노그래드를 애먹였다. 위노그래드 교수는 “페이지는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커다란 기술적 문제에 매료돼 있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알파벳이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자율주행차량, 열기구를 이용한 인터넷망 구축, 암·노화 관련 치료제 개발 등에 과감히 나선 것도 그의 성향을 보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물론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모든 분야의 지식을 전부 습득할 수는 없다. 대신 페이지는 세세한 기술적 내용을 다 알려고 하기보다 어떤 문제를 어떤 기술로 해결하고, 거기서 어떤 사업 기회가 있는지 찾는 것에 집중한다. NYT는 “페이지는 ‘여기에 어떤 기회가 있을까’ ‘이것을 더 확장할 수 없을까’ 같은 질문을 즐겨 한다”고 소개했다. 소형 원자로를 만드는 미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트랜스아토믹파워의 레슬리 드완 공동창업자는 “페이지는 원자력의 배경지식은 없었지만 상당히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순다르 피차이 전 수석부사장에게 구글 CEO 자리를 넘겨주고 일상 업무와 거리를 둔 페이지는 미래를 대비한 큰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와 같이 일한 사람들은 그가 구글 CEO로 있을 때도 회의로 꽉 짜인 스케줄을 피하고 항상 연구논문과 신기술 관련 서적을 읽을 시간을 남겨놓곤 했다고 전했다.

구글을 오랫동안 취재한 니컬러스 칼슨 비즈니스인사이더 편집장은 “페이지는 누구보다 기술에 애착이 있다”며 “2001년 처음 CEO를 맡았을 때는 비(非)엔지니어가 엔지니어를 관리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구글의 모든 프로젝트 매니저를 해고하려 한 적도 있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