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focus] 명운 건 핀테크 승부 우등생 vs 열등생
금융과 정보기술의 합성어인 핀테크(fintech) 분야에 대한 은행권의 광폭 행보가 놀랍다.
다소 과열된 은행들의 핀테크 경쟁에는 저금리의 장기화로 수익성 제고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시중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의 다급한 속사정이 숨어 있다.

올해 은행들의 핵심 전략 중 공통분모로 포함돼 있는 단어가 바로 ‘핀테크’다. 지난해가 핀테크와의 접점을 찾았던 탐색기였다면 올해는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도약기인 셈. 시중은행장의 신년사를 살펴보면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이 핀테크를 전략의 중심에 두고 있다.

2015년을 스마트디지털 뱅크의 원년으로 정해 가장 활발하게 핀테크와의 접점을 만들어 왔던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신년사를 통해 “핀테크를 바탕으로 창의적 신사업을 선도해 새로운 마켓에서 그 기반을 선점함은 물론 금융시장에서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강한 은행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도 신년사에서 “자금 결제, 보안, 빅데이터와 같은 핀테크로 인해 금융의 영역이 넓어지고 변화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며 “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새로운 판의 주도권을 갖는 만큼 KB가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지난해 12월 모바일 플랫폼인 써니뱅크와 무인스마트점포 디지털 키오스크를 시장에 선보이며 막판 깜짝쇼를 보여주었던 신한은행의 조용병 행장도 신년사에서 “디지털 금융 환경에 맞춰 고객에게 가치 있는 경험과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채널 혁신을 할 것”이라며 “생체 인증 범용성 확대, 모바일뱅킹 기능 강화 등 비대면 채널의 경쟁력을 높이고, 옴니채널 기반의 고객경험관리(CEM) 프로세스를 구축해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게 솔루션을 제공받게 하겠다”고 밝혔다.

선두로 나선 우리은행, 한 발 늦은 신한은행
국내 은행의 핀테크 사업은 대략 6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우선 비대면 채널 강화 등을 통한 ‘고객 편의성 증진’(우리은행 위비뱅크, 신한은행 써니뱅크 등)과 모바일뱅킹, 인터넷전문은행 등을 활용한 ‘중금리대출 강화’(우리은행 위비뱅크 등)다.

또 ‘고객의 정보 비대칭 개선 및 커뮤니티 강화’(우리은행 위비톡 등), 핀테크 기업 지원(KB국민은행 KB스타터스 밸리, IBK기업은행 핀테크 드림 랩 등), 핀테크를 활용한 자산관리 서비스 강화(KB국민은행 스마트폰 푸시 서비스 등), 해외 공략 첨병 활용(KEB하나은행 원큐뱅크, 중국과 인도네시아 출시 추진 등)이 탐색전을 끝낸 은행권이 선택한 핀테크 사업의 범주다.

업계에서는 우리은행이 핀테크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광구 은행장은 지난 2014년 12월 취임 직후 진행한 정기 조직개편에서 핀테크사업부를 선도적으로 신설한 바 있는데 지난해 5월에는 은행권 최초로 모바일 전문 은행 ‘위비뱅크’를 선보이며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이어 같은 해 공인인증서 없이 송금할 수 있는 ‘위비모바일페이’(5월), 위비 여행자보험(7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없이도 스마트폰으로 ATM 현금 출금이 가능한 ‘우리삼성페이’(8월), SOHO모바일 신용대출(9월), 모바일 대출서비스 위비뱅크 캄보디아 오픈(9월), 위비 꿀적금(10월), 위비 직장인·공무원 모바일 대출(11월), 우리 워치뱅킹 통한 국내 최초 위비페이 간편송금 서비스(11월) 등을 선보였다. 올해 1월에는 금융사 최초로 은행 전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위비톡의 상용화로 눈길을 끌었다.

우리은행이 위비뱅크를 통해 은행권에 변화를 준 대목은 서류 없는 대출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대출 시 필요한 서류를 받는 대신 대출 신청자의 동의를 받아 국세청,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 등으로부터 직접 필요한 자료를 확보해 대출을 실행하거나, 개인사업자 대상의 SOHO모바일 신용대출의 경우 현장실사를 없애고 국세청과 비씨카드 가맹점 280만 곳에 대한 정보를 활용하고 나이스신용평가정보의 사업성평가지수와 핀테크 기업인 화남이 개발한 정보를 한곳에 모아 분석해 처리하는 스크래핑 기술을 적용해 대출 승인을 내줄 수 있도록 하면서 이른바 서류 없는 대출을 실현해낸 것이다.

우리은행은 우리핀테크나눔터를 활용한 1인 창업자 지원이나 핀테크지원센터를 통한 핀테크 스타트업 상담 지원으로 핀테크 기업들과의 공생의 길도 마련했다. 이광구 은행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모바일뱅크 위비뱅크를 동남아시아 시장에도 내놓겠다”며 글로벌 공략에 대한 의지도 전했다.

신한은행은 리딩뱅크답지 않게 핀테크 분야에서 다소 늦게 발동을 걸었다. 은행 방문 없이도 계좌 신규 개설과 카드 발급 등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 특화 금융 서비스 ‘써니뱅크’와 107가지의 창구 업무가 가능한 무인스마트점포 ‘디지털 키오스크’를 지난해 12월에야 공개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1999년 국내 최초 인터넷뱅킹을 시작했으며, 2015년 1월을 기준으로 은행권에서 등록한 총 607건의 특허권 중 절반이 넘는 323건을 신한은행에서 보유했을 정도로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은행권 최초로 모바일 직불 결제 서비스인 마이 신한페이가 출시된 것은 2014년 7월이었다.

신한은행은 국내의 경우 신한퓨처스랩을 통해 잠재력 있는 국내 핀테크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대출 플랫폼 기업 ‘비모’와 블록체인을 이용한 외화송금 업무 기업 ‘스트리미’ 등 은행권 최초로 기업에 직접적인 투자(10년 만기 상환전환우선주 인수)를 감행하기도 했다.

신한은행은 핀테크를 활용해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 국가에 현지 환경에 특화된 디지털 서비스를 준비하겠다는 복안인데 실제 16개국에 현지 인터넷·스마트뱅킹을 업그레이드하는 글로벌 2.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2015년 8월에는 베트남 시장에 모바일 앱으로 ‘SMILE VN(스마일 베트남)’을 출시하기도 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인터넷뱅킹 이용 고객 수가 2000만 명을 돌파한 바 있지만 그동안 은행권 최대의 고객 기반을 핀테크 분야에서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했다. KB국민은행이 2012년 3월에 신설한 스마트금융부 산하에 핀테크팀을 새로 만든 것은 지난해 2월의 일이다.

이후 KB국민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금융과 업무 서비스가 하나로 융합된 기업 핀테크 플랫폼인 ‘KB 비즈스토어(bizstore)’를 지난해 8월에 출시하며 눈길을 끌었고, KB국민은행의 경우 KB스타터스 밸리를 통해 스타트업 기업에 입주 공간, 투자 연계, 제휴 사업 등을 꾸준히 제공하며 호평을 얻었다. 특히 KB인베스트먼트는 아시아 최초로 비트코인업체에 대한 투자도 실시했는데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비트코인 거래소인 코인플러그에 15억 원을 투자한 게 바로 그것.
KB국민은행은 카카오뱅크 컨소시엄에 참여해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취득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다른 은행들에 비해 다소 뒤처진 핀테크 분야에서 역전의 발판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은행권 원조 전자지갑 격인 ‘하나N월렛’을 내는 등 스마트금융 분야의 강자였던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외환은행과의 통합 작업 등으로 어수선한 한 해를 보냈다.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핀테크 ‘원큐(1Q)랩’을 지난해 6월에 개소하고, 2015년 초에 캐나다에서 먼저 내놓은 원큐뱅킹(휴대전화 번호를 통해 P2P 자금이체)의 국내 도입을 진행하며 나름대로 성과를 냈지만 다른 은행들의 약진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올해 역시 원큐뱅크를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에 출시하며 해외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선순위 과제에서 옛 하나은행과 옛 외환은행 간 정보기술(IT) 통합에 밀린다.

NH농협은행과 IBK기업은행도 지난해 핀테크 분야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3월 금융권 최초로 NH핀테크협력센터를 설립해 운영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NH핀테크혁신센터를 개소해 핀테크 스타트업과의 상생 공간으로 활용했다.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상반기 드림 공모전을 통해 핀테크 기업을 발굴하고 드림지원센터를 통해 지원에 나섰으며, 핀테크 기업 육성 프로그램 드림 랩도 호평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8월에 출시한 ‘아이원뱅크’는 하나의 앱으로 222개 예·적금, 펀드, 대출, 카드, 외환 등의 상품을 24시간 365일 가입할 수 있게 해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issue& focus] 명운 건 핀테크 승부 우등생 vs 열등생
KB국민 대대적 추격전, 기업·농협도 분주
시중은행들은 핀테크 분야에 역량을 집중시키기 위해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으며, 이는 각 은행 CEO들의 명운을 건 승부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올해 말로 임기가 끝나는 이광구 은행장은 지난해 대규모 조직개편을 통해 14년 만에 수석부행장 제도를 없애고, 그룹장 체제를 도입했다. 또 핀테크사업부가 소속돼 있는 스마트금융사업단을 스마트금융사업본부로 격상하고, 담당 임원을 상무에서 부행장급으로 올렸다. 새롭게 스마트금융사업본부를 맡는 조재현 부행장은 핀테크사업부를 포함해 ICT사업단, 스마트금융부 등을 총괄하게 됐다.

우리은행의 가장 큰 과제는 바로 민영화다. 이는 이 은행장의 연임 가능성과도 직결돼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우리은행의 가치를 시장에 보여줘야 하는데 증권과 보험 등 자회사를 시장에 매각한 뒤라 내부 시너지를 내기가 만만치 않다는 어려움이 있다.

신한은행의 조용병 은행장은 지난해 3월 취임해 남은 임기가 1년 3개월로 다소 여유가 있지만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 받아야 한다. 특히 조 은행장의 임기 만료는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겹치는데 한 회장이 1948년생으로 나이 제한(만 70세) 때문에 더는 연임을 할 수 없는 터라 후임 선임을 앞두고 조 은행장의 갈 길은 바빠 보인다.

신한은행의 핀테크 사업은 미래채널부에서 맡고 있는데 그동안 핀테크 전문가로서 써니뱅크 출시 등을 이끈 박호기 미래채널본부장이 지난해 12월 30일자로 제주은행장을 맡게 되며, 새롭게 바통을 이어받은 김재우 본부장의 어깨가 무겁다. 김 본부장은 IT기획부장, 업무개선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쳐 핀테크 역량 강화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종규 회장은 2014년 11월 공식 취임해 오는 2017년 11월 20일까지 임기가 다소 여유 있게 남았지만 KDB대우증권 인수 실패 등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윤 회장은 취임 초부터 KB국민은행의 리딩뱅크 수복을 공언했지만 아직까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KB금융지주는 지난해 12월 29일 진행한 조직개편에서 핀테크 관련 부서의 대수술을 단행했다. KB금융지주에 미래금융부를, KB국민은행에 미래채널그룹을 각각 신설하고 임원 한 사람이 이를 겸직해 총괄하도록 한 것인데 종전 마케팅기획담당 상무에서 승진해 중책을 맡은 박영태 전무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무는 지난해 KB금융의 핀테크 전략을 주도한 인물로 정보보호부, 데이터분석부, 미래금융부를 총괄한다.

지난해 은행 통합 작업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소비해야 했던 KEB하나은행의 각오도 남다르다. 함영주 은행장은 지난해 9월 첫 통합행장으로 취임했는데 스마트금융 선두 은행의 명예 회복을 벼르고 있다. 지난해 8월 진행된 조직개편 내용을 살펴보면 영업부문을 미래금융그룹과 마케팅그룹, 자산관리그룹으로 나눴는데 기존 미래금융사업본부를 그룹으로 격상한 대목이 눈에 띈다. 현재 미래금융그룹은 그동안 스마트금융을 진두지휘해 온 한준성 전무가 맡고 있는데 IT 통합 등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핀테크 사업을 다시 본궤도에 올려놔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NH농협은행의 이경섭 은행장은 올해 1월 4일 취임한 뉴 페이스다.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 가야 할 그에게 핀테크 분야는 하나의 도전 과제일지도 모른다. 새 선장을 도울 임원은 서기봉 부행장으로 영업추진본부장을 맡으며 스마트금융부까지 총괄하게 된다.

올해 마지막 임기를 맞게 될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에게 올 한 해는 새로운 시험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의 성격이 강한 IBK기업은행에서 은행장 연임은 쉽지 않은 과제다. 그의 올 한 해가 아름다운 마무리일지 새로운 도전일지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관전 포인트다.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3월 스마트금융부 안에 소속됐던 핀테크사업팀을 불과 5개월 만인 7월에 정식 부서인 핀테크사업부로 확대한 바 있으며, 이를 주축으로 점차 핀테크 사업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