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글로벌 화학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선다.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이 높은 해외 강소기업을 인수해 범용 석유화학 시장을 무섭게 잠식하는 중국 기업의 공세를 막아내겠다는 전략이다.

◆화학사업 강화 나선 SK

SK "글로벌 화학 강소기업 M&A 할 것"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사진)은 4일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의 상하이 사무소에서 김형건 SK종합화학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략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 부회장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범용 석유화학제품 중심의 사업구조를 고부가 화학제품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며 “해당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있는 글로벌 강소기업에 대한 M&A에 적극 나서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SK종합화학은 고부가 화학제품 분야에서 차별적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발굴해 M&A하거나,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 회장은 “석유화학 사업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경기 부진과 성장 저하에 대한 우려가 높은 시기지만, 세계 최대 석유화학 시장인 중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며 “중국 시노펙과 SK종합화학이 합작해 설립한 중한석화와 같은 제2, 제3의 합작 성공모델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SK "글로벌 화학 강소기업 M&A 할 것"
◆“범용 제품은 中에 상대 안돼”

정 부회장이 글로벌 강소 화학기업에 대한 M&A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지금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의 비중을 확 높여놓지 않으면, 앞으로 4~5년 안에 SK의 석유화학 사업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 같은 판단의 배경에는 중국 화학기업의 무서운 성장세가 있다.

중국 정부는 평균 70% 수준인 주요 석유화학 제품의 자급률을 2020년까지 10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국 기업을 키우고 있다.

시노펙 등 중국 주요 석유화학 기업은 최근 3~4년 새 한국 기업의 생산설비보다 원가 경쟁력이 뛰어난 최신식 생산설비를 지어 저렴한 가격의 범용 화학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발(發)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는 테레프탈산(TPA)을 예로 들면 한국 기업은 1개 라인에서 65만~70만t을 생산하는 반면 중국 기업은 200만t 이상 만들고 있다”며 “범용 제품 분야에선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국내 기업이 중국의 상대가 안 된다”고 말했다.

SK종합화학은 100% 자체 기술로 개발한 고부가가치 폴리에틸렌 브랜드 제품 ‘넥슬렌’을 생산 중이다. 그러나 LG화학 등 경쟁 기업에 비해 전체 사업에서 고부가가치 제품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M&A로 퀀텀점프 노려

석유화학업계는 SK가 고부가가치 화학사업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M&A라는 수단을 들고 나온 것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연구개발(R&D)을 통한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것과는 차별화된 전략이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작년에 6000억원이던 R&D 투자를 2018년까지 9000억원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연구인력도 2018년까지 1000여명을 확충할 계획이다. 한화케미칼은 KAIST와 함께 미래기술연구소를 작년에 설립해 올초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2020년까지 운영할 예정인 이 연구소는 차세대 석유화학 물질 원천기술 및 제조기술 개발, 에너지 절감이 가능한 고순도 정제 공정 개발 등 사업성이 높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씨를 뿌린 뒤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R&D에 주력하는 상황에서 SK는 M&A를 통한 퀀텀점프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이와 관련, 재계에서는 “그룹의 성장 역사와 문화가 반영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석유공사(유공) 한국이동통신 하이닉스 등을 인수해 커온 SK는 M&A로 단숨에 성장하는 데 익숙한 그룹”이라고 설명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