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가 보유한 정기예금을 활용해 자사보다 훨씬 높은 신용등급을 받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을 조달한 사례가 등장했다. 지난 몇 년간 건설업황 부진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져 자체 신용만으로는 부동산PF 자금을 원활하게 확보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건설사들이 보유 예금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고안해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건설은 최근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650억원의 부동산PF를 조달했다. 만기는 내년 1월23일까지로 약 1년이다.

이번 ABCP는 단기 신용등급으로 최상인 A1을 받았다. SK건설의 단기 신용등급인 A2-보다 3단계 높은 것이다.

SK건설이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에 맡긴 650억원의 정기예금을 ABCP 신용보강 수단으로 활용한 덕분이다. SK건설은 정기예금을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에 신탁하고 원리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신탁수익권)를 SPC에 넘겨줬다.

SPC가 만기 때 ABCP 원리금을 갚을 돈이 부족해질 경우 정기예금 원리금으로 이를 보충할 수 있도록 해 신용을 높여준 것이다. ABCP 신용등급은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한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는 “SK건설은 예금을 활용해 신용등급을 받음으로써 부동산PF 조달 금리를 낮추는 효과를 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SK건설은 ABCP 발행 시점에 자사가 지급보증을 하면 받았을 A2-등급과 예금을 활용해 받은 A1의 금리 차이만큼 이익을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SK건설은 지난해 9월23일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400억원의 ABCP를 발행했다.

SK건설이 잇달아 정기예금 신용보강 ABCP를 발행하면서 건설사들의 새로운 자금조달 방식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 IB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런 방식의 ABCP는 ‘틈새 조달 수단’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증권사 채권발행시장(DCM) 분야 관계자는 “정기예금을 ABCP의 담보로 제공하게 되면 사용 제약이 생겨 건설사의 전체 현금흐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유상증자나 자산매각을 통해 일시적으로 잉여 현금을 보유한 건설사 등이 부동산PF를 조달할 때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