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국-이란 금융결제 수단 다변화 고민…30일 이란 방문단 출국
열쇠 쥔 미국…美 재무부와 협상 불가피


정부와 금융권 관계자들로 구성된 이란 방문단이 30일 출국한다.

핵 개발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면서 국제사회의 경제·금융 제재에서 벗어난 이란과의 금융거래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방문단은 이란 중앙은행 측과 기존 원화 결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이를 보완할 유로화 결제 시스템 등을 새로 구축하는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로화 등 제3국 통화를 이용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해도 역외 거래시장이 없는 원화의 특성상 달러화가 중간에 개재돼야 한다.

이 때문에 한국과 이란의 교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용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 기존 원화계좌 유지 수준 논의

29일 은행권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란 방문단은 기재부, 외교부 등 정부 관련 부처와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원화 계좌를 운용하는 기업은행·우리은행 관계자들로 구성된다.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돼 우리나라 기업은 자유롭게 이란을 상대로 한 무역과 투자를 할 수 있지만 미국의 제재 법령 때문에 거래 과정에서 달러화 사용은 계속 금지된다.

우리 정부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원화는 역외시장에서 제대로 거래되지 않아 원화를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 기타 통화로 바꾸려면 직접 교환이 이뤄지는 달러화라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기존 원화 계좌를 이용하지 않고 이란과 거래하면 '달러화 거래 금지'라는 미국의 제재 조치를 어기게 된다.

한국과 이란의 원화 계좌는 2010년 대(對) 이란 제재가 시작된 이후 두 나라 정부가 고심 끝에 연 우회로였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계좌가 있다.

한국 정유사가 이란에서 원유를 수입한 대금을 원화로 이란 중앙은행 명의 계좌에 입금하면 이란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로 바꿔 대금을 내준다.

반대로 한국 기업은 이란 중앙은행 명의 계좌에 쌓인 원화로 대(對) 이란 수출 대금을 지급받는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재가 풀린 이후 당장 돈이 필요해진 이란은 원화 계좌에서 필요한 만큼을 빼 나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와 관련해 이란은 기업·우리 은행 계좌에 쌓인 금액의 1%가량을 가져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1% 정도를 내주는 것이 문제가 없는지 미국과 상의가 필요하다"며 "이란이 원화를 그대로 가져가면 사용할 곳이 없기 때문에 유로화로 바꿔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달러화 개입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란이 찾아간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 사용하면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이 미국 금융기관과의 다른 거래를 제약받을 위험이 있다.

이란이 요구하는 돈을 내주고 싶어도 들어주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에 따라 이란 방문단은 우선 원화 계좌를 어느 수준으로 유지할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 유로화 결제시스템 만들어도 '달러 개입' 불가피

한국 기업 입장에선 될 수 있으면 원화 계좌를 확대하는 게 좋다.

원화로 결제하면 환차손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 석유업체 입장에선 원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분산하고 이란 중앙은행에 주는 수수료 부담을 최소화하려면 결제 통화의 다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기업이 이란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경우 원화 결제계좌 잔액이 부족해질 수 있어 결제 시스템 다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선 기업들이나 정부도 모두 공감하고 있다.

이란이 달러화 사용을 못 하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원화 자금을 찾아갈 경우 이란 기업이 국내 수출기업에 대금을 지급할 여력이 함께 줄어들어서다.

하지만 거래 편의를 위해 유로화·엔화·위안화 등으로 결제 시스템을 다변화한다고 해도 '달러화 개입'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나타난다.

유럽 현지은행에 우리나라 은행이 계좌를 트고 이란과 유로화로 거래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 경우에도 원-유로 환전 과정에서의 달러화 개입이 논란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역외거래가 어려운 원화의 특성을 인정해 미국 정부가 한국과 이란 간에는 달러가 개재된 이종통화 거래를 용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핵심은 이란이 아니라 미국"이라며 "미국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c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