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삼성물산이 2조6000억원에 이르는 잠재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저가 해외 수주로 1조5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며 자본잠식에 빠진 데 이어 삼성물산도 해외 수주에 따른 엄청난 손실을 고백한 것이다.

작년 9월 제일모직과의 통합을 계기로 과거 부실 요소를 한 번에 반영하기로 한 것. 삼성물산은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바이오 자회사들에 대한 평가이익 2조8000억원 등을 기초로 연간으로는 흑자를 냈다.
삼성물산의 결단…잠재손실 2조6000억 한 번에 털어냈다
무리한 해외 수주가 부메랑으로

삼성물산은 지난해 결산에서 옛 삼성물산 사업들을 평가해 우발부채와 자산가치 하락 등 총 2조6000억원 규모의 잠재손실을 실적에 반영했다고 28일 발표했다.

손실 규모는 건설부문이 1조6000억원, 상사부문이 1조원에 달한다. 대규모 손실은 주로 해외 프로젝트에서 발생했다. 호주 로이힐 철광석 광산 인프라 건설사업의 잠재손실이 8500억원으로 평가됐고, 카자흐스탄 발하슈 발전소 프로젝트의 예상 손실과 우발부채가 1500억원이었다.

호주 서부의 철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철도 항구 등 인프라를 건설하는 로이힐 사업은 2013년 수주할 때부터 저가 수주 논란이 일었다. 당시 경쟁하던 포스코건설-STX건설 연합이 제시한 돈보다 5000억원 적은 56억호주달러(약 4조7000억원)에 수주해서다. 지난해 12월 철도와 항구를 완공해 처음 선적했으나 현재 발주처와 공기 지연에 따른 지체보상금을 놓고 협상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발하슈 발전사업은 1320메가와트(㎿)급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해 운영까지 하는 사업이다. 48억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지만 원자재 가격 급락으로 카자흐스탄 경제의 불황이 깊어지자 공사가 중단됐다. 또 자원 개발에 투자해 보유하던 유전 자산이 유가 하락에 따라 5600억원 가치가 감소했다. 그 외 지급보증 및 지체보상금 우발부채도 4500억원을 반영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이번에 부실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검토해 남김없이 반영했다”며 “옛 삼성물산의 잠재손실을 모두 털어낸 것은 통합을 계기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새 출발 의지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손실을 반영하며 삼성물산은 지난해 4분기 매출 7조2211억원에 영업손실 891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은 1617억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연간으론 매출 30조300억원, 영업손실 1490억원에 당기순이익 2조881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제일모직과의 합병 효과 덕분이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가 3조2000억원으로 평가돼 장부가(4000억원)와의 차액 2조8000억원이 이익으로 잡혔다.

또 삼성물산 서초사옥 등 각종 부동산과 캐나다 온타리오 사업권 등의 가치가 1조1000억원가량 늘었다. 삼성 관계자는 “지난해 제일모직과의 통합 당시 삼성물산 주식을 저평가했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 보면 삼성물산은 상당한 부실을 안고 있었고 제일모직은 우수한 자산을 갖고 있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없었다면 충격이 컸을 것이라는 얘기다.

“부실 털고 새 출발”

2000년대 후반부터 2013년까지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높았던 시절, 국내 건설·조선업계에는 해외 수주 열풍이 불었다. 건설사들은 경쟁적으로 각종 자원개발 프로젝트를 따냈다.

상사들은 유전, 광산 등에 투자했고 조선사는 해양플랜트를 앞다퉈 수주했다. 국내 업체들이 과당 경쟁까지 하며 수주가는 뚝뚝 떨어졌다.

저가 수주의 대가는 혹독하다. 건설업계에선 2013년에만 GS건설 9373억원, SK건설 4900억원, 삼성엔지니어링 1조28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대부분 해외 공사에서 입은 손실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작년 3분기에도 1조5127억원의 적자를 내고 자본잠식에 빠져 증자를 추진 중이다.

조선업계에서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가 지난해 모두 합해 8조원의 적자를 냈다. 2014년까지 합하면 2년 만에 10조원이 넘는 적자를 봤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