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제조업 성장률 추락…2009년 이후 최저
올해도 중국불안·저유가 등 악재 많아 3%대 달성 쉽지 않을 듯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6%는 한국 경제가 당면한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2014년(3.3%)보다 0.7% 포인트 낮고 2012년(2.3%)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라는 돌발 변수가 있긴 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저성장 흐름에서 한국도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다.

과거 5%대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은 물론이고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4년간 경제 성장률을 보면 2012년 2.3%, 2013년 2.9%, 2014년 3.3%, 지난해 2.6%로 3%대를 달성한 것은 한 해뿐이었다.

이미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인구 고령화와 투자 부진 등으로 2%대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3년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뒤 3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평균 2.9%다.

이전 추이를 봐도 김대중정부(1998∼2002년) 5.3%, 노무현정부(2003∼2007년) 4.5%, 이명박정부(2008∼2012년) 3.2% 등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올해 한국 경제의 앞날도 그리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 경제의 둔화와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신흥국 경제 불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 악재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 수출증가율 6년 만에 최저…민간소비는 정부 대책에 2%대 '선방'

지난해 한국 경제는 성장률을 떠받치는 두 축인 수출과 내수 모두 가시밭길을 걸었다.

무엇보다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의 타격이 컸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지난해 재화와 서비스 등 수출 증가율은 0.4%로 2014년(2.8%)보다 2.4% 포인트나 추락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있었던 2009년(-0.3%) 이후 6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기여도는 -1.2% 포인트로 2010년(-1.4%) 이후 5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교역조건은 개선됐지만, 중국의 경기 둔화 등 세계적인 교역위축에 영향을 받았다.

한국은행 국제수지에서 작년 1∼11월 국가별 수출액(통관기준)을 보면 일본에서 21% 급감했고 중남미(-12.7%), 중동(-12.2%), 동남아시아(-7.8%), EU(-6.9%), 중국(-4.5%) 등 대부분 지역에서 줄었다.

이런 영향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꼽혀온 제조업은 지난해 성장률이 1.4%로 전년 4.0%에서 급격히 낮아졌다.

제조업 성장률 1.4%는 2009년(-0.5%) 이후 가장 낮다.

지난해 민간소비는 정부의 경기 부양책 등으로 수출보다 그나마 좋은 성적표를 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2.1%로 2011년(2.9%) 이후 4년 만에 2%대에 복귀했다.

작년 5월 말 터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는 국내 소비를 얼어붙게 한 커다란 악재였다.

메르스 감염에 대한 우려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기피하면서 유통업계는 직격탄을 맞았고 중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도 크게 줄었다.

이에 정부가 시행한 개별소비세 인하,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 등의 소비활성화 대책이 일정부분 효과를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전승철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브리핑에서 "정부의 소비활성화 대책이 민간소비의 증가에 상당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 올해 저유가·중국 불안 등 악재 '수두룩'…3%대 성장 난망

한국은행은 지난 14일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3.0%로 하향조정했다.

국제유가 하락 등 대외적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세계 경기의 회복으로 상품 수출이 확대되면서 작년 성장률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연초부터 수출과 내수에서 뚜렷한 개선세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적지 않다.

이는 최근 발표된 수치를 통해서 감지되고 있다.

관세청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액은 85억2천4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2.5% 급감했다.

특히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 역할을 해온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은 수출 증가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20달러대로 추락한 국제유가도 자원수출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이처럼 수출 환경이 어두운 상황에서 내수 감소에 우려도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서울 및 6대 광역시 944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2016년 1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를 조사한 결과, 올해 1분기 전망치가 96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분기 100(기준치)을 기록하고 3분기 연속 96에 머물렀다.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는 유통업체들의 체감 경기를 수치화한 것으로 올해 소비가 다소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경기 부양책 효과가 사라지면서 올해 소비가 급감하는 '소비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작년 12월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8% 줄어들기도 했다.

1천2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계 부채는 소비를 제약할 공산이 크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경제 성장률은 1분기에 소비절벽을 얼마나 막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며 "소비절벽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을 집중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 빗나간 경제 전망…"정확성·신뢰성 높여야"

한국은행의 지난해 GDP 성장률 발표를 계기로 경제 전망에 대한 정확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2014년 1월 경제전망보고서에서 2015년 GDP 성장률을 4.0%로 전망했고 석달 뒤인 4월에는 기준연도 변경에 따라 4.2%까지 높였다.

실제 성장률 2.6%와는 무려 1.6% 포인트 차이를 보인 것이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와 국제유가 급락이라는 돌발변수를 감안하더라도 오차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다른기관 역시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는 마찬가지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작년 성장률을 애초 3.8%로 전망했다가 작년 말 2.6%까지 계속 낮췄다.

LG경제연구원(3.9%→2.6%), 한국경제연구원(3.7%→2.5%), 한국금융연구원(3.7%→2.6%)도 전망치를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경제 전망은 기업의 사업 계획 수립과 가계의 지출 계획에 참고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지나친 오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특히 정부와 중앙은행의 과도한 전망 오차는 자칫 경기 하강에 대한 적절한 정책 대응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noj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