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신사업 약진 이끄는 구본준의 용병술
(주)LG의 신사업추진단장인 구본준 부회장(사진)이 지난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6’에 나타났다.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GM) 최고경영자(CEO)를 만나고 전시장을 돌아다니던 구 부회장의 옆엔 이우종 LG전자 VC(자동차부품)사업본부장이 함께 있었다. 이 사장은 대우자동차 출신의 대표적인 외부 영입인사다.

LG그룹의 외부 출신 인재들이 신사업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순혈’이 아님에도 오랜 기간 중책을 맡으며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LG가 기존 전자·화학에서 자동차부품, 에너지 등 기업 간 거래(B2B)로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인재 영입을 주도한 구 부회장의 용병술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핵심 신사업 ‘외부 출신’이 책임진다

‘순혈주의’가 강한 한국 기업에서 외부 인재는 핵심 역할을 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입된 뒤 단기간에 성과가 없으면 퇴출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LG그룹은 분위기가 다르다. 일단 영입하면 중책을 맡길 뿐 아니라 오래 믿어준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이 사장이 대표적이다. 대우자동차 기술이사로 근무하다 2001년 LG그룹에 입사한 이래 15년째 자동차부품 사업을 맡고 있다. 이 사장과 함께 자동차부품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핵심 인재도 모두 외부 출신이다. 자동차부품기술센터장인 윤용철 전무와 디자인연구소장인 최상원 상무가 대표적이다. 윤 전무는 미국 GM의 핵심부품사인 델파이 출신으로 지난해 영입됐다. 자동차부품 선행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 또 최 상무는 닛산 출신으로 자동차부품 디자인을 담당한다. 그룹 핵심 신사업의 요직을 모두 외부 출신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LG 신사업 약진 이끄는 구본준의 용병술
최성호 LG전자 클라우드센터장(전무)도 비슷한 사례다. 네이버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2012년 LG전자에 영입된 이래 4년째 사물인터넷(IoT)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역시 LG가 집중 육성하고 있는 사업이다.

LG전자의 핵심 상품 중 하나인 OLED TV의 마케팅도 외부 출신인 이정석 상무(HE사업본부 마케팅 담당)가 담당한다. 프록터&갬블(P&G) 출신인 그는 2010년 LG전자에 입사한 이래 에어컨과 TV 마케팅에서 중책을 맡아왔다. LG전자가 다음달 7일 열리는 미국 슈퍼볼(프로미식축구 결승전)에 OLED TV 광고를 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상무가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말 사장으로 승진한 백상엽 (주)LG 시너지팀장도 삼성전관(현 삼성SDI)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20년 전인 1996년 입사해 ‘영입인사’로 부르기는 어렵지만, 그룹의 최고 요직으로 불리는 시너지팀장을 맡고있는 핵심 인재다.

믿고 기다려주는 신뢰의 LG

LG그룹의 한 외부 출신 임원은 “구 부회장이 외부 출신 인재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며 믿음을 준다”고 전했다. 이 임원은 “통상 대기업에 고액 연봉을 받는 임원으로 영입되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당장 성과가 나는 데 집중하게 된다”며 “하지만 LG에선 충분한 시간을 주기 때문에 3~4년 뒤 아이템에 대해서도 구상할 수 있고, 시간을 갖고 개발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성과도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LG전자는 미국 GM, 인도 타타자동차, 중국 둥펑자동차, 지리자동차, 이치자동차 등에 전기차 부품을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기존에 경쟁력이 있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뿐 아니라 구동모터 등 핵심 부품 쪽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오랜 기간 한 방향으로 연구개발(R&D)을 집중한 결과라는 평가다. 백 사장이 사업을 주도한 에너지 쪽도 마찬가지다. LG전자는 최근 경북 구미시 태양광 공장에 5272억원을 투자해 증설하기로 했다. LG가 개발한 고효율(에너지 전환효율 19% 이상) 태양광 모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서다.

IoT 쪽에서도 LG전자는 CES 현장에서 폭스바겐과의 협력을 발표했고, 다수의 에너지 기업으로부터도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