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개인정보를 유출한 카드사에 피해를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카드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판결 내용을 접한 카드사들은 "우리 잘못으로 벌어진 일인 만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몸을 낮추고 있다.

앞으로 유사한 선고가 이어질 경우 경영상의 압박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카드업계 전반에 대한 이미지가 거듭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 수수료 논란에 정보유출 판결 악재까지…'엎친 데 덮친' 카드사들

최근 정부의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조치로 난관에 봉착한 카드사들은 이번 판결로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됐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2014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용정보업체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직원이 보안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은 PC로 개인정보를 빼내는 과정에서 KB국민카드와 NH농협카드, 롯데카드가 보유한 1억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됐다.

이 일로 카드사들은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됐고 피해자들은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박형준 부장판사)는 22일 KB국민카드와 농협카드 및 코리아크레딧뷰로를 상대로 고객 5천여 명에게 1인당 1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카드업계의 걱정은 유사 소송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는 점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당장 이번 판결로 입는 금전적 손실 자체는 크지 않을 수 있다"며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에만 80건이 넘는 유사소송이 걸려 있어 이후 같은 판결이 계속 내려질 경우 손해액도 점점 불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각 카드사에 청구된 금액은 300억원~500억원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카드수수료 인하 방침으로 올해 수익으로만 6천700억원이 줄어들 처지에 놓인 카드사들로서는 엄청나게 부담되는 액수다.

카드업계는 재판 선고 때마다 '정보유출'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점도 뼈아프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정보유출 사태 당시 카드사들은 마치 국민의 공적처럼 여겨졌다"며 "겨우 상처가 아물어가는 시점에 판결이 나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 고개숙인 카드사들 "우리 불찰…재발 방지 힘쓸 것"

카드사들은 이번 판결에 따른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NH농협카드 관계자는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앞으로 대응 방안을 철저히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KB국민카드 관계자 역시 "이후 정보 보안에 더욱 힘쓰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유출 사건 이후 회원가입 신청서에 주민등록번호가 아닌 '고객대체번호'를 입력하게 하거나, 임직원 대상 정보보안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등 개선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카드사들에 대한 불신이 큰 만큼,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물론 업계 내부에서는 "금전적 피해 배상 판결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다.

실제로 카드사들은 법정에서 ""KCB 직원 개인의 범행이기 때문에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이런 입장을 거듭 주장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판결에 불만을 제기하는 모습이 강조될 경우 여론이 더욱 나빠질 수 있다"며 "지금은 낮은 자세로 반성하면서 슬기롭게 버텨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고동욱 기자 hysu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