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영기업, 4천800억원에 피레우스항 지분 67% 인수 우선투자자 지정
중국, 유럽·아프리카 진출 가속 전망

최근 무서운 속도로 외국 기업들을 쇼핑 중인 '차이나머니'가 그리스 최대 항구마저 손에 넣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필요한 유럽의 주요 해상 거점이 추가되면서 일대일로에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정부가 자산 매각을 위해 설립한 '그리스 자산개발기금'(HRADF)은 20일(현지시간) 이사회를 열어 중국 국영 해운회사인 중국원양운수(COSCO·코스코)그룹을 피레우스 항구의 지분 67%를 인수할 우선투자자로 선정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HRADF는 성명을 내 "이사회는 코스코그룹이 최고 입찰자임을 밝히며, 이 기업을 우선투자자로 지정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식 인수 여부는 피레우스 항구의 기존 주주들과 그리스 회계당국, 의회 등의 승인 절차를 거쳐 오는 3월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단독 입찰한 코스코그룹이 우선투자자로 지정됨에 따라 사실상 이 회사에 항구 지분이 넘어가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AP와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코스코그룹은 피레우스항만공사(OLP)의 지분 67%를 총 3억6천850만 유로(약 4천849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해 HRADF 이사회의 승인을 받았다.

COSCO가 제안한 인수가격은 주당 22유로로, 이날 아테네 증시에서의 OLP 종가인 12.95유로보다 69.8% 높다.

당초 이 회사는 총 2억9천300만 유로(약 3천855억원)의 인수 가격을 제시했다가 퇴짜를 맞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레우스항은 그리스 최대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주요 항구로 아시아, 동유럽, 북아프리카의 관문으로 여겨진다.

지난 2014년 기준으로 1천680만 명의 여객과 360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의 화물이 이 항구를 통과했다.

COSCO는 지난 2009년부터 피레우스항에서 컨테이너 터미널 1곳을 운영 중이다.

특히 최근 제2터미널을 짓기 위해 2억3천만 유로(약 3천27억원)를 투자하는 등 이곳을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노력해왔다.

따라서 이번 지분 인수는 국제 물류 통로 확보는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에 대한 경제·군사 진출을 가속하려는 중국의 노림수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최근 중국의 피레우스항 인수 추진 소식을 전하면서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추진하는 광역경제권구상인 일대일로의 중요한 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에 동맹국이나 우호적인 해상거점을 갖지 못한 중국이 유럽에서도 굴지의 물류 거점인 이 항구를 노려왔다는 게 이 신문의 분석이다.

특히 새해 들어 중국 기업들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가전부문과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사인 레젠더리픽처스 등을 잇따라 인수하는 등 전 세계에서 '쇼핑'에 나선 가운데 전해진 소식이어서 더욱 주목받는 부위기다.

이번 인수는 국유자산 매각에 나선 그리스 입장에서도 큰 성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피레우스항 지분 매매 절차가 완료되면 지난해 1월 알렉시스 치프라스 좌파 정부가 집권한 이후 14개 지방공항 운영권을 12억 유로(약 1조5천791억원)에 독일 프라포트AG로 넘긴 이래 2번째로 큰 국영자산 매각 사례가 된다.

치프라스 정권은 집권 후 모든 국유자산의 매각을 중단했으나, 지난해 유로존으로부터 860억 유로(약 113조원) 규모의 3차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 압력을 받아왔다.

지난 2010년부터 구제금융의 핵심 조건인 민영화 작업에 본격 착수한 그리스 정부는 정치적 저항과 관료적 문제로 민영화를 통해 아직 35억 유로(약 4조6천58억원)밖에 거둬들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치프라스 총리는 피레우스항 우선 투자자가 선정된 이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블룸버그TV와 인터뷰를 하고 "2016년은 그리스가 세계 경제를 놀라게 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회복을 위한 중대한 지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