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들의 특별 리포트] 대처보다 센 '캐머런의 개혁'…일자리 넘치는 영국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세계로 번지면서 영국 경제도 큰 타격을 받았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시행한 영국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은행 간 대출금리가 두 배가량 올라 기업과 가계가 심각한 신용경색을 겪었다. 이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다.

주택·건설부문이 큰 타격을 입었다. 영국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마이너스(2008년 4분기 -2.3%)를 기록했고, 경제위기와 실업 증가로 세금 수입이 감소한 상황에서 복지 지출이 늘어나 공공재정이 악화됐다. 재정적자 규모는 2008년 GDP의 2.7%에서 2009년 10.2%로 커졌다. 또 부실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등으로 국가부채는 금융위기 이전 GDP의 43.6%에서 2010년 76.4%로 크게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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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들의 특별 리포트] 대처보다 센 '캐머런의 개혁'…일자리 넘치는 영국
영국은 2013년부터 경제가 정상 궤도로 올라섰다. 2013년과 2014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각각 2.9%, 2.8%로 미국 일본 독일 등을 포함한 주요 8개국(G8) 중 가장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보였다. 특히 영국은 2012년부터 고용률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실업률은 감소했다. 지난해 10월 영국 실업률은 5.2%로 완전고용 수준에 근접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더딘 경기 회복 및 높은 실업률과는 확연히 대조를 보이고 있다.

영국이 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받았음에도 2013년 이후 견조한 경제 성장과 높은 고용률을 기록함에 따라 영국이 어떻게 금융위기를 극복했는지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정책입안자들의 관심사가 됐다.

금융위기 이후 2010년 집권한 보수·자민당 연립정부는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재정적자 축소를 목표로 내걸고 정부지출을 삭감했고 조세 인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긴축재정을 추진했다. 공공서비스 및 복지예산 삭감 등을 통해 2015년까지 재정적자를 해소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연립정부는 긴축재정을 추진해야 하는 논거로 이전 노동당 정부의 확장적 재정운영이 큰 폭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로 이어졌다는 점을 꼽으며 △정부는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는 지출을 하지 말아야 하고 △복지예산 삭감을 통해 공공지출을 축소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자원을 민간에 배분해 중장기적으로 경기회복과 성장을 견인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런 긴축재정 기조는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한 보수당 단독정부에서도 계속 추진돼 지난해 11월 발표한 추계 수정예산에서 ‘2020년까지 복지예산 120억파운드를 삭감하고 GDP에서 공공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2010년 45%에서 2020년까지 36.5%로 축소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제위기로 성장률이 둔화하고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영국 정부가 긴축재정을 선택한 것에 대해 언론, 싱크탱크,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쟁이 전개됐다. 긴축재정이 영국의 경기회복과 성장을 얼마나 견인했는지, 사회 경제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은 없었는지 치열한 토론이 이뤄졌다.

논의 가운데 몇 가지를 간략히 소개하면 첫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석좌교수는 긴축재정의 경기회복 견인에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영국 중앙은행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통화정책이 경제회복을 견인하는 데 한계를 보인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재정정책(공공지출 확대)이 수요창출과 경기회복에 절대적 필요조건이라는 논리를 제시했다. 영국의 긴축재정은 경기회복보다는 정부지출을 영구적으로 감소시켜 궁극적으로 ‘작은 정부’를 실현하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다.

둘째, 싱크탱크인 영국 재정연구소(Institute of Fiscal Studies)의 칼 에머슨 부소장은 영국 정부가 정치적 담론 수준에서 긴축재정 기조를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유연성을 발휘, 차입을 확대했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정부의 긴축재정 추진에도 불구하고 2010~2012년 공공재정수지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공공부채가 늘어 흑자재정 달성 시기가 2015년에서 2020년으로 연기된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영국 일부 언론과 학자는 정부가 2013년 차입을 확대한 시점과 영국 경제의 회복 시기가 맞물린다는 점에서 긴축재정이 아니라 긴축재정 완화가 영국의 경제를 견인했다며 정부와는 상반된 해석을 했다.

셋째, 일부 언론과 시민사회 그룹, 싱크탱크는 긴축재정이 미치는 사회 경제적 효과에 주목했는데, 공공서비스 예산 감축으로 인한 불평등 심화와 공공서비스 질 저하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예를 들면 최근 영국 북부지역 홍수피해가 해당부처 예산 삭감으로 홍수 대비시설을 확충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영국 정부의 긴축재정 정책에 대한 상반된 의견과 논쟁은 다양한 세계관이 반영된 결과로 보이는데,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영국의 긴축재정과 경제성장의 견인 관계는 단순한 논리로 해석하기 어렵다. 영국 정부는 경기 진작을 위해 초완화적 통화정책(초저금리와 대규모 양적 완화)과 함께 긴축재정을 추진했고, 법인세를 인하하면서 부가가치세를 인상했고, 복지예산을 축소하면서 국민의료서비스 예산을 보호하는 등 복합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기업과 가계의 신용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중소기업 대출장려책과 주택구매 지원책도 함께 시행했다. 영국 정부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은 정부’와 ‘큰 정부’의 양 측면을 모두 발휘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하자마자 평상시 흑자재정을 운영하는 것을 강제하는 법안을 입법화하는 한편 복지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저소득 근로계층 지원 삭감 계획을 파기하는 일종의 타협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다양한 사회계층과 집단의 이해를 반영하고 조율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정부로서 특정 계층에 불이익 또는 혜택을 주는 일면적 정책을 추진할 수 없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적인 제약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이 지난 금융위기 이후 G8 국가 중 가장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보이며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영국 정부가 추진한 긴축재정의 효과 이외에 부문별로 시행한 확장적 정책 등이 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cmkim91@mof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