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재학생들이 창업한 온라인 중고차 경매업체 헤이딜러는 설립 1년여 만에 누적 거래액 300억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5일 갑자기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작년 말 국회에서 온라인 경매업체도 일정 규모의 주차장 등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자동차관리법이 통과되면서 영업 자체가 불법이 됐기 때문이다.

엉뚱한 법 개정으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문을 닫게 되자 글로벌 시장에는 없는 ‘한국식 갈라파고스 규제’에 대한 원성이 높아졌다. 급기야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신교통·물류사업 12개사 대표들을 만나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강 장관은 “행정이 사회 혁신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며 “세상의 눈부신 변화에 부응할 수 있도록 행정 속도와 사회 혁신 속도 차이를 줄여가겠다”고 말했다.
뒤늦게 '스타트업 걸림돌' 치우겠다는 정부
규제에 발목 잡힌 스타트업들

헤이딜러는 이용자가 중고차 사진과 연식 등의 정보를 입력하면 전국 자동차 딜러들이 경매 방식으로 매입하는 스마트폰 서비스다. 오프라인 주차장과 경매장을 갖추고 영업하는 기존 업체와는 사업 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도 주차 공간 확보를 의무화하면 중고차 매매와 관련한 다양한 신사업 모델은 발을 붙일 수 없게 된다.

콜버스랩은 지난달부터 서울 강남지역에서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이용해 승객을 모아 운행하는 전세버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택시를 잡기 어려운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주로 영업한다. 승객은 택시비의 절반 수준으로 편리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승객을 빼앗기게 된 택시업계가 반발했다. 불특정 다수를 태우는 콜버스랩의 운행 방식이 전세버스업 범위에 맞지 않는다며 서울시에 단속을 요구했고, 서울시는 국토부에 위법 여부에 대한 판단을 의뢰했다. 규제에 발목 잡혀 스타트업들이 고사할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강 장관은 이날 스타트업 대표들과 조찬 간담회를 열고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우선 지방자치단체에 온라인 업체에 대한 유연한 단속을 주문하고 이르면 2월 중 주차장 등 공간 확보 의무를 아예 없애거나 줄이는 쪽으로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심야 콜버스도 불편을 겪는 국민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제 고집해선 스타기업 못 키워

스타트업은 지금까지 없던 서비스를 찾아 사업화한다.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에서 핀테크(금융+기술), 빅데이터, 헬스케어까지 다양하다. 이 과정에서 기존 규제와 마찰이 빚어지는 경우가 잦다. 자동차 공유 서비스인 우버가 세계 곳곳에서 불법 논란에 직면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기존 규제만을 고집하면 새로운 스타 기업을 키우기 어렵다.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는 “시범서비스 한 달 만에 이렇게 빨리 규제 목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며 “새로운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까다로워 빅데이터산업 활성화를 막는다는 정부 산하기관(한국정보화진흥원)의 보고서도 최근 발표됐다.

정부 일각에서도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스타트업을 위해 위치정보사업에 대한 간이신고제도를 신설하고 심사 기간도 3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하기로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신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백지에서 꼭 필요한 규제만 유지하는 쪽으로 규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창업지원센터 디캠프의 김광현 센터장은 “불허하는 항목만 나열하고 나머지는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정부 규제 전반을 바꿔야 새로운 창업 기회를 늘릴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태훈/백승현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