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최근 고재호 전 사장을 저가 수주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해달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냈다. 조선업계에선 고 사장의 연루 여부와 관계없이 이를 계기로 덤핑 수주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선업체들이 겪고 있는 대형 위기도 2012~2013년 국내업체 간 유례없는 초저가 수주 경쟁이 빚어낸 참사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진정서를 접수한 창원지방검찰청은 12일 이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여부를 검토 중이다. 대우조선 감사위원회는 진정서에서 고 전 사장이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에 대한 면밀한 원가 분석 및 계약조건의 분석 없이 원가에 못 미치는 저가로 수주하고, 내부적으로 제시된 견적금액도 타당한 근거 없이 추가로 할인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업계 빅3' 덤핑 경쟁…"원가 이하 계약도 강행"
원가 이하 가격으로 수주경쟁

조선업계에 따르면 저가수주 경쟁은 2012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1년 9570만GT(총톤수)였던 세계 선박 발주량은 2012년 6260만GT, 2013년 4120만GT로 줄었다. 한 대형 조선사 영업 담당자는 “발주가 줄면 가격이 내려가는 건 당연하지만, 일부 업체가 원가 이하의 가격을 제시해 수주를 따가는 일이 반복됐고 결국 업계 전체가 저가수주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고성능선박 시장은 사실상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만의 영역이었는데도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2012년 빅3가 모두 뛰어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빅3 중 2개 회사는 척당 2억달러가 넘는 시장가격을 포기하고 원가에도 못 미치는 척당 1억8500만달러 수준의 가격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두 회사는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했다. 또 다른 빅3인 A사가 원가보다 10%나 싼 척당 1억7000만달러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한 조선사 임원은 “원가보다 10% 낮춰 응찰했는데도 수주를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발주사들은 공공연하게 다른 회사가 얼마를 불렀다는 정보를 흘려 저가수주를 부추겼다”고 전했다.

발주처가 제시한 황당한 계약 조건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례도 많았다. 한 에너지 기업은 2013년 다수의 특수선 프로젝트를 발주하면서 ‘선박 건조 후 시운전 과정에서 선박 속도 등 일정 조건에 미달하면 계약 전체를 무효화한다’는 조항을 요구했다. 당시 대부분의 국내 조선사는 자칫하면 최대 1조원 규모의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무효화 조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B사는 이 조항을 수용하고 수주를 따냈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한국 조선사들이 모두 거부했으면, 관련 조항을 빼고 계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B조선사 욕심 때문에 한국 조선업체들이 국제시장에서 불리한 조건에서 수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더딘 구조조정이 저가수주 초래

조선업계에서는 더딘 구조조정도 저가수주 경쟁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2012년 조선 발주량이 줄기 시작했지만 한국 조선사들의 생산 규모는 줄지 않았고 결국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중국의 조선 생산량은 2011년 2090CGT(표준환산톤수·건조 난이도 등을 고려한 선박 무게)에서 2015년 1200CGT로 42.5% 줄었지만, 한국의 생산량은 같은 기간 26.5% 감소하는 데 그쳤다. 중국은 지난해에도 ‘화이트리스트’를 발표, 이 리스트에 포함된 조선사만 지원하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 조선사 대부분은 경영위기에 빠지더라도 금융권의 지원을 받으며 생존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당장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수주하는 경향이 있다”며 “금융권 지원을 받는 조선사의 경영진은 임기 중 실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저가수주를 감내하라고 지시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