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관치로는 희망 없다
새해를 맞아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답답함이 밀려온다. 한국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까닭이다. 이는 단순히 중국 증시 폭락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과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에 따른 안보 위협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경제가 이미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이 표류하고 있어서다. 또 정부의 구조개혁은 소리만 요란할 뿐 실질적으로 이뤄진 것이 없고 정치권은 정파 이익에만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쇠퇴하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가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에 포함된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한국전력 네 개에 불과했다. 10년 전에는 아홉 개가 포함돼 있었는데 10년 새 다섯 개나 줄어든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 기업은 0개에서 37개로 늘어났다. 한국의 기업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지난해 수출과 제조업 실적이 악화돼 2011년 이후 줄곧 유지해왔던 ‘무역 1조달러’에 못 미쳤고, 제조업체 매출 증가율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게다가 한국의 주력 산업인 조선·철강·석유화학·건설 등이 위기에 봉착해 있다. 뿐만 아니라 청년실업은 좀처럼 줄어들고 있지 않으며,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 경제가 심각한 국면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정 방향은 경제적 자유를 확대해 민간 경제가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다. 한 국가의 경제성장과 발전을 일으키는 동인은 결국 활발한 민간의 경제활동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을 옥죄고 있는 수많은 규제를 포함해 민간 경제 활동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함께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국정 상황을 보면 경제 상황의 절박성을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정부는 구조개혁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개선되는 것은 거의 없고 오히려 정부 관료들의 영향력만 확대돼 가고 있다. 금융개혁과 교육개혁에서 그렇다. 민간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구조개혁의 핵심은 관치 철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개혁이란 미명 아래 관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파 이익에만 매달려 국정에는 관심조차 없는 정치권은 또 어떤가. 여당은 ‘진박, 친박, 비박’으로 나뉘어 다투고, 야당은 분할돼 이합집산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정쟁만 일삼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일제 식민지가 됐던 아픈 역사가 있다. 이렇게 정치권이 국가 이익은 돌보지 않은 채 정파적 이익만 앞세운다면 한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국정이 표류하고 있는 이유는 국정 철학이 분명치 않은 데 있다. 국정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부국강병이 돼야 한다. 부국은 경제력을 말하며 강병은 군사력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다. 경제력과 군사력은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군사력은 경제력이 바탕이 돼야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경험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밝혀진 사실은 자유주의 이념을 실현한 나라가 부국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는 철학은 사유재산권, 경쟁, 법치, 제한된 정부 권력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에 있다.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이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을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국가로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에 대한 확고한 철학만 갖고 있다면 국정이 이렇게까지 표류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이 자유주의를 공부해야 할 이유다.

시간이 없다. 지난 60년간 피와 땀으로 이룩한 성과를 망쳐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후손에게 망가진 경제를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2016년을 걱정과 답답함으로 시작하지만 우리가 자유주의 철학에 입각한 국정을 시행한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희망으로 바뀔 수 있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