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회장 "은행 둘러싼 시공간 바뀌는 중…핀테크·슬로뱅킹으로 승부"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7일 “모바일 시대를 맞아 은행에 대한 ‘손님’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며 “기존 영업 방식을 고집해선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변화에 맞춰 올해 핀테크(기술+금융)와 슬로뱅킹을 두 축으로 금융 혁신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올해 그룹 전체 순이익 중에서 해외부문 순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을 30%가량으로 높이겠다”고 말했다.

제25회 다산금융상 대상을 수상한 김 회장은 이날 한 신년 인터뷰에서 이 같은 경영구상을 밝혔다. 다산금융상은 금융위원회와 한국경제신문사가 탁월한 실적으로 금융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금융인과 금융회사를 표창하기 위해 제정했다.

김 회장은 금융산업의 변화와 관련해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영업점을 찾는 소비자가 줄어 객장이 텅텅 비는데 과거와 같은 영업 방식을 고집할 수는 없다”며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 영업 전략으로 ‘슬로뱅킹’과 ‘핀테크’를 제시했다.

슬로뱅 킹은 은행 영업점을 단순히 예금을 받고 대출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과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제공해 ‘다시 찾고 싶은 장소’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김 회장은 “공연을 보고 미술작품을 감상하며 식사도 할 수 있는 복합금융센터를 올해 서울 부산 제주 등 세 곳에 마련해 슬로뱅킹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나금융의 복합금융센터는 한 건물에 은행·증권·보험 상품을 모두 판매하는 복합점포와 함께 예술작품 전시공간, 문화공연장, 커피숍, 고급식당 등을 아우르는 형태다. 올 상반기 부산, 제주에 이어 12월 말 서울 삼성동에 문을 연다. 삼성동 복합금융센터엔 가수 박진영 씨가 운영하는 바, 배우 배용준 씨가 운영하는 카페, 음악 공연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김 회장은 핀테크에 대한 대응도 강조했다. 슬로뱅킹이 소비자가 은행에 머무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라면, 핀테크는 은행 업무를 보는 ‘공간’의 개념을 바꾸는 차원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김 회장은 “올해는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하는 등 지금껏 말로만 듣던 핀테크가 현실화되는 첫해가 될 것”이라며 “모바일뱅킹 확산으로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만큼 고객이 있는 곳에 먼저 찾아가고 무인점포를 늘리는 등 혁신과 변화를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성사된 하나·외환은행 합병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김 회장은 “상반기 하나·외환은행 전산통합을 마무리짓고 하반기엔 이를 토대로 수익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올해부터 글로벌사업 역량을 강화해 통합 KEB하나은행의 비전인 ‘2025년 글로벌 40위, 아시아 5위 은행’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국내 은행들은 해외 점포망을 통해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을 상대하는 내수 영업만 해 왔다”며 “KEB하나은행은 앞으로 현지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진짜 글로벌화’를 통해 수익을 내겠다”고 말했다. 중국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 5개국에서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점포망 통합을 통해 지난해에만 3000억원가량의 순이익을 내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회장은 “올해 글로벌 부문 순이익을 지난해보다 약 30~40% 늘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사업과 관련해선 자산 늘리기보다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KEB하나은행이 출범한 이후 지난해 3분기 총자산 기준 국내 1위 은행으로 올라섰지만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38%, 자기자본이익률(ROE)은 4.94%로 미흡하다”며 “올해 ROE를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몸집을 키우기보다 알찬 수익을 내는 ‘강한 은행’으로 키우겠다는 얘기다.

■ 슬로뱅킹(slow banking)

은행 영업점을 호텔이나 카페, 갤러리, 공연장처럼 꾸며 고객이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이를 통해 은행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2006년 미국 오리건주 움프쿠아은행이 처음 시도했다.

이태명/박한신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