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3일 서울 대한상의 회장실에서 연 신년 인터뷰에서 “기업들이 일을 벌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요청했다. 대한상의 제공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3일 서울 대한상의 회장실에서 연 신년 인터뷰에서 “기업들이 일을 벌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요청했다. 대한상의 제공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은 정부 주도의 산업구조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법이 오는 8일까지 통과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아울러 북한 조선상업회의소와의 협력을 통해 북한의 수출과 시장경제 활성화를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박 회장은 3일 기자들과 한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를 구조적으로 바꿔야 하는 ‘골든타임’은 이제 1~2년밖에 남지 않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경제 법안 통과돼야 불확실성 해소”

박 회장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국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 경제가 저성장으로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계획한 것을 착실하게 수행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한 정부 경제팀이 잘할 수 있도록 국회가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구체적으로는 해를 넘긴 노동개혁법과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임시국회가 끝나는 8일까지는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 법안들이 통과되면 그 다음날 바로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상당 부분 불확실성은 해소된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서비스발전기본법은 서비스의 기본 틀을 바꾸는 것으로 일자리 증가가 눈에 보듯 분명하다”며 “(서비스산업이) 제조업보다 훨씬 고용계수가 높은 걸 누구나 인정하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안 하는 걸 정당화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이 대기업 특혜법으로 인식돼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박 회장은 “원샷법에서는 대기업이 악용할 수 있는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10대 그룹을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하면 11대 기업은 성장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규제비용총량제를 규정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 필요성도 역설했다. 규제비용총량제는 규제를 새로 만들 때 생기는 비용만큼 기존 규제를 폐지해 규제비용 총량이 추가로 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박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차고에선 드론(무인항공기)이 생겨나고 수억명의 기업인들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는데 우리는 ‘내가 허락하는 것만 되고 다 안 돼’라고 하면 무슨 일이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정부는 구조조정 수단 없다”

정부에 대해서도 요청사항을 쏟아냈다. 그는 우선 “국회와 협조해서 기업인과 기업들이 막 일을 벌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줬으면 좋겠다”며 “일을 막 벌이도록 자유롭게 해주고 안 된 것은 나중에 야단치고, 사후규제를 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산업구조조정에 대해선 정부가 지원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 조선·중공업·철강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의 유례없는 위기로 무척 힘든 한 해를 보냈다”며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다만 그 방식은 개별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와 경제가 투명해진 지금은) 정부가 구조조정을 강제할 마땅한 수단도 없다”며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산업 전체가 공멸한다는 생각을 갖고 개별 기업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법적·제도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올해 한국 경제의 3대 리스크로 중국 경제 둔화, 미국 금리인상 지속, (금리와 환율 등에 대한 국제 사회의) 탈동조화를 꼽았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하다고 소개했다. 이런 이유로 올해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새해에 좋아질 게 별로 없다고들 하는데 그럼 똑같은 논리로 더 나빠질 게 뭐가 있느냐고 보면 더 나빠질 것도 없다”며 긍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원산지 증명 활용한 대북 교류 추진”

박 회장은 대한상의가 북한의 조선상업회의소와 국제상업회의소(ICC) 채널 등을 통해 교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다양한 무역 거래처를 활용해 북한산(産) 물품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도록 중개무역을 활성화할 수 있다”며 “조선상업회의소가 발행한 원산지 증명을 근거로 대한상의가 북한산이라는 원산지 증명서를 발행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상의는 이를 위해 남북경협분과위원회를 발족했다.

박 회장은 “(최근) 북한 전문가들과 만났는데 북한이 장마당을 통해 시장경제를 허용한 지 꽤 됐다고 한다. 지금 지방에선 장마당 사기업이 생기고 소득이 높은데 평양에는 도시빈민이 생겼다. 휴대폰이 280만대가 넘어가는 데 없어서 못사는 상황이라고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기후협약에 따른 탄소배출권도 남북이 거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