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켈틱 호랑이' 아일랜드] '좋은 일자리' 주 1000개씩 생겨…IT·헬스케어 '인재 전쟁'
지난해 성탄절 연휴, 해외에서 일하다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입국한 아일랜드인들의 눈길을 끈 것은 글로벌 4대 회계법인인 KPMG,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딜로이트, 언스트앤영(EY)이 경쟁적으로 더블린 국제공항에 설치해 놓은 구인 광고판이었다.

홍보 간판을 세워 놓은 KPMG아일랜드의 폴 밴스 채용본부장은 아일랜드 일간지 아이리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일랜드 경제가 살아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아일랜드 사람이 귀국을 고려하고 있다”며 “우리 회사는 경력직 250명과 신입직원 300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PwC는 공항 터미널 두 곳의 입구를 채용광고로 도배했다. PwC아일랜드의 피어걸 오루크 매니징파트너는 “사업 성장 가능성이 큰 지금이야말로 해외로 떠난 아일랜드 사람들이 고국에서 새 일자리를 찾기 적합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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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있다”…귀국 물결

아일랜드 경제가 살아나면서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난 젊은이들이 속속 귀국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12년 이후 아일랜드 민간부문에서 생긴 일자리가 13만6000개에 달한다며, 이 일자리를 따라 해외 이민자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일랜드는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자산 거품 위에 성장해온 아일랜드 경제는 급격히 나빠졌다. 결국 2010년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675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켈틱 호랑이(Celtic Tiger)가 이빨이 빠졌다’는 조롱을 받았고, 금융위기 직전 4%대로 ‘완전 고용’ 수준이던 실업률은 2012년 초 15.2%까지 치솟았다. 고학력 젊은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나갔다.

2009년부터 2014년 사이 33만명가량이 아일랜드를 떠났다. 그 전까지 아일랜드는 주로 이민을 받는 쪽이었지 인력을 내보내는 쪽은 아니었다. 대부분 영국(22%)과 영국 외 EU 회원국(33%), 호주(16%), 미국(7%) 등 영어권 국가로 흩어졌다.
[부활한 '켈틱 호랑이' 아일랜드] '좋은 일자리' 주 1000개씩 생겨…IT·헬스케어 '인재 전쟁'
민간 일자리 13만여개 급증

그러나 최근 2~3년 새 상황이 바뀌었다. 작년 3분기 실업률은 8.9%로 떨어졌다. 2012년 184만명 수준이던 고용 규모는 지난해 196만명까지 증가했다. 아일랜드 인구는 약 480만명이다. 아이리시타임스는 지난해 12월28일 “매주 1000개씩 일자리가 생기고 있다”며 “핵심 산업의 인력난이 커지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다국적 기업이 잇달아 아일랜드로 본사를 옮기면서 서비스 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 성탄절 연휴 더블린 국제공항을 도배하다시피 한 4대 회계법인의 구인광고는 상징적이다. 다국적 기업 본사의 직접 고용뿐 아니라 세무·회계 등 관련 서비스 수요 증가에 따른 간접 고용도 급증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뿐 아니라 소규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고용을 늘리고 있다. 아일랜드중소기업연합(Isme)과 소기업협회(SFA)는 정부기관인 ‘엔터프라이즈 아일랜드’와 함께 ‘고국에서 일하세요(#hometowork)’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패트리샤 캘런 SFA 국장은 “실업률이 떨어지면서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고, 보유하고 있는 인재를 뺏기지 않기 위한 ‘인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캘런 국장은 “별도로 인사관리 부서를 운영하지 못하는 스타트업은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특히 정보기술(IT) 엔지니어, 줄기세포 등 과학전문가, 헬스케어, 영업 관련 인재를 찾는 수요가 많다”고 덧붙였다.

공공부문 일자리도 늘고 있다. 공공보건기구인 HSE는 작년 여름부터 500명의 의사·간호사를 추가 채용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난 이민자를 대상으로 임금 외에 1500유로 규모의 보상 패키지를 제공하겠다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아일랜드 주재 호주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호주로 이주한 아일랜드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76%가 5년 내 아일랜드로 돌아갈 것이라고 답했다. 또 64%는 귀국을 고려하게 한 요소로 ‘일자리’를 꼽았다.

세계 최저 수준 법인세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스위스 취리히 등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폴 테리(43)는 지난해 5월 18년간의 해외 생활을 청산하고 아일랜드로 귀국했다. 더블린에 있는 비즈니스 전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링크트인의 국제본부에 간부 자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두 아이에게 아일랜드 전통을 가르쳐주면서 살 수 있게 돼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테리가 이 같은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아일랜드의 낮은 법인세율(12.5%)과 관련이 깊다. 구글, 페이스북, 링크트인,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 등 IT 분야 대기업은 대부분 세금을 아끼기 위해 아일랜드에 법인을 설립하고 이익을 그리로 몰아주고 있다. ‘세금 바꿔치기(tax inversion)’라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해당 기업들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의 문제’로 보고 있다.

EU 내 다른 국가에서 아일랜드로 본사를 옮기는 기업도 있다. 혈장 전문 헬스케어 회사인 스페인 그리폴스는 지난해 11월 본사를 더블린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해외 기업들이 속속 아일랜드에 둥지를 틀거나 사업을 확장하면서 새 일자리들이 나온다. 마이크 매커 EY아일랜드 매니징파트너는 “최고의 인재들을 아일랜드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계속 끌어들일 핵심 열쇠”라고 강조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