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학부 수업 시간에 ‘여학생들이 대학 정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남학생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나가 일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남학생들의 기회비용을 빼앗은 셈이며 여학생 개인의 귀한 인적자원의 손실 못지않게 사회 전체로도 손해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지 않고 부인이나 엄마가 되어 수행하는 가족 서비스의 경제적·사회적 가치는 논외로 하고 하는 말이다.

2014년 대학 진학률을 보면 여학생이 75%로 남학생의 68%보다 7% 포인트 높다. 일찌감치 군대 가는 남학생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학생들의 시험 성적이 평균적으로 더 높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의 마음도 변했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다고 하더라도 공부시키는 데서 더 이상 아들딸을 차별하지 않는다. 자녀가 딸아이 한 명뿐인 가정도 많은 저출산 시대여서 딸들에 대한 부모의 기대감도 커졌다. 딸들 입장에서 보면 부양 의무가 커졌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처럼 성평등적 교육 기회와 성취가 여학생들이 사회로 진출하고 난 후 지속적인 사회·경제적 성취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2014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 통계’에 따르면 2014년에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여성 28만5000명 중 65%가 취업해 남성의 취업률(69%)과 거의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취업한 대졸 여성의 27%가 취업 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 것으로 조사됐다.
‘고단한 커리어 우먼’…딸들에게 박수를
30대 이후 남녀 취업률 격차 벌어져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나 허드렛일을 그만둔 여성들은 계속 일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구직 활동을 하는 대졸 여성의 취업률이 55%라는 최근 통계로 보아 졸업 연도로부터 멀어질수록 취직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인적 자본력을 키우기 위해 일반 대학원을 고려한다면 그 또한 권유하기 어렵다. 일반 대학원을 졸업한 여성의 취업률이 2013년 기준 59%로, 일반 대학원 졸업자 전체 취업률 69%보다 10% 포인트나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취업 후 일을 계속 한 꿋꿋한 대졸 여성들도 서른 줄에 들어서면 시험대에 오른다. 출산과 육아, 자녀 교육 등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200만 명의 이른바 ‘경력 단절 여성’ 대열에 자의 반 타의 반 합류할 것인지를 두고 말이다.

여성의 경력 단절 현상은 20대 후반에는 별로 없던 남녀의 취업률 격차를 30대 초반에 남자 80%, 여자 58%에서 30대 후반에는 남자 92%, 여자 55%로 크게 벌어지게 만든다. 일을 그만뒀던 여성의 상당수는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인 40대에 재취업한다. 대졸 여성은 남편의 수입이 괜찮은 중산층이라면 대학 졸업장에 웬만큼 어울릴 일자리를 찾을 것이지만 사실 그런 일자리는 거의 없다.

노동의 질이 떨어지는 40대 여성 재취업 시장에서 고학력은 오히려 페널티로 작용한다. 이런 저간의 사정으로 고학력 여성이 여느 선진국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늘어났지만 여성 경제활동인구의 절반만 일하는 수치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고 있다. 어찌 사회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직종의 여성 취업자들이 일을 오래할까. 교직과 교수, 의·약사, 법조인 등 전문 기술직이거나 상대적으로 이직률이 낮은 공무원이다. 하지만 이들 직종의 종사자 수는 제한돼 있고 실제로 대부분의 대졸 여성 인력을 채용하는 곳은 기업이다. 따라서 회사에 취직한 대졸 여성들이 커리어 우먼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고학력 여성 인적자원의 낭비라는 사회적 문제도 고쳐질 수 없다.

일에 대한 자긍심 살려줘야

대졸 여성들이 커리어 우먼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어떤 여건들이 마련돼야 할까. 고용 및 임금 차별을 없애는 데 주력했던 정부의 정책 방향은 수년 전부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육아휴직 확대나 보육 지원으로 옮겨 왔다.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일하는 여성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된 것은 고학력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일과 일터를 가치 있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가정과 일터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동시에 요청받는 고학력 여성들에게 월급 이상으로 일의 의미는 아주 중요하다.

대부분의 워킹 우먼들은 회사에 매여 있는 동안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에게 할애했어야 할 시간 대비 일터의 효용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정책이 워킹 우먼의 재생산 활동 비용을 보조해 줘 근로 동기를 지속시켜 주려고 했다면 앞으로는 이들의 생산 활동의 효용을 증대시키는 과제를 중시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을 넘겨 회사에, 또는 회식과 술자리에 잡아두는 관행은 가정을 가진 여성들이 지불해야 할 일의 값을 쓸데없이 높인다. 여성 직원을 한시적 하급자로 취급하면서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 상사들은 고학력 여성들로 하여금 커리어 우먼의 꿈을 접게 만든다.

기업 부문 고학력 여성 취업자들이 일을 통해 자신과 회사, 나아가 국가를 발전하게끔 하는 과제는 정부보다 기업들의 몫이다. 고학력자의 공급이 넘치는 시대에 기업들이 대졸 여성을 사내 리더로 육성하려는 인센티브를 갖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2015년의 한 조사에 나타났듯이 4대 그룹 주요 계열사 51곳의 여성 임원 비율은 불과 2.2%에 그쳤다. 함께 조사된 49개국 가운데 꼴찌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과감한 인사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의 목표는 의사 결정의 자리에 여성 비율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내 고학력 여성들에게 직무 능력 향상 기회를 제공하면서 이들을 대표자의 지위에 올리는 것이다.

고학력 여성들이 자기가 하는 직무에 자긍심을 느끼고 커리어가 발전한다고 생각할 때 가정과 일의 경쟁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일터에서 귀함을 받아야 여성에게 과중하게 부과되는 가정의 업무를 떳떳하게 나눌 수 있다. 또한 가정보다 일을 선택한 싱글 우먼들이 점점 늘어가는 상황에서 이들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의사 결정 자리에 있는 남성 관리자들은 기업 생산성과 사회적 공헌이 여성 리더를 육성하는 데서 실현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선진국에서도 여성 비즈니스 리더가 의사 결정의 자리에 끼어들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사람들은 남성 상급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기업 고위직에 있는 남성들을 보면 대개 부인이 취업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이가 많고 여성관이 보수적이다.

“회사의 그녀들을 당신의 딸이요, 누이동생으로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이들의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려는 열정이 생길 것이다.
‘고단한 커리어 우먼’…딸들에게 박수를
이숙종 <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성균관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