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하반기 이후 국내경기 좋아져야 가능할 듯
자본유출 규모·국내경제 회복 속도 변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올리는 쪽으로 선회함에 따라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번 달 기준금리를 연 1.50%로 6개월째 동결했지만 앞으로 셈법이 복잡해질 공산이 크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영향과 국내 경제의 회복세를 주시하며 신중한 통화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 올리기도 내리기도 곤란…당분간 동결기조 이어갈 듯

한은은 미국을 성급하게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상태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0일 금통위를 마친 뒤 "미국의 금리 인상이 곧바로 한은의 금리 인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기대 심리가 이미 시장에 반영돼 있고 금리 인상의 속도도 완만할 것이기 때문에 대응할 시간은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한은은 기준금리의 인상 시기를 가급적 늦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올리는 것이 모두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리를 올리면 자칫 국내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세계적인 교역 위축으로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 국내 소비가 얼마나 회복될지 불투명하다.

또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채가 많은 가계와 기업은 부담이 커진다.

미국과 반대로 기준금리를 내릴 경우에도 부작용이 뒤따를 전망이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와 기업 부채를 늘릴 수 있고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장애물을 만들 수 있다.

올해 기준금리 인하가 실물경제에 미친 가시적 성과가 약한 상황에서 효용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국내에서 기준금리와 달리 시중금리가 오른 점도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지난 9월부터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비해 대출금리를 조금씩 올렸다.

앞으로 미국 정책금리의 추가 인상 전망에 따라 시중은행 금리가 계속 올라가면 기준금리와 차이가 더 벌어질 수 있다.

◇ 외국자본 유출·국내 경제 회복이 변수

이주열 총재는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고려할 변수로 미국의 금리 인상 이후 국제금융시장 및 신흥국의 움직임과 그에 따른 국내 경제의 변화를 꼽았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국내 경제의 위험 요인은 무엇보다 외국인 자본의 유출 가능성이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가 좁혀지고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안전자산인 달러를 좇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많이 빠져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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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정부와 한국은행은 미국의 금리 인상에 국내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3천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과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 등 외환 건전성이 개선돼 방어막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최근 10거래일째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는 등 외국인 자본의 이탈 현상이 이미 나타났다.

정부와 시장이 예상한 것보다 외국인의 자본 유출이 심각하면 금리 인상 카드를 일찍 꺼내들 수 있다.

미국의 추가적인 금리 인상 속도도 변수다.

미국이 내년에 경기 회복세에 따라 추가로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우리나라도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두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또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재정이 취약한 신흥국에서 경제 위기가 발생하고 이 위기가 다른 국가에 퍼지면 우리나라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의 움직임도 지켜봐야 한다.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며 미국과 다른 길로 가고 있어 혼선이 생길 수 있다.

◇ 내년 하반기는 돼야 기준금리 인상 여건 조성될 듯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시기는 적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수출 부진과 저물가 등을 고려할 때 국내 경제가 단기간에 안정적인 회복세에 올라서기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또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 부채와 부동산 시장의 충격 등 부작용을 줄이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내년 하반기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할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과거 사례를 살펴봐도 미국과 한국의 금리 조정에는 짧지 않은 시차가 있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의 이정훈 선임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미국 금리 인상기의 국내 금리정책 변화' 보고서를 보면 1999년부터 최근까지 미국의 정책금리 변화가 시작된 후 한은이 기준금리를 같은 방향으로 조정하는데 평균 9.7개월이 걸렸다.

특히 2004년 7월 시작한 미국의 금리 인상기를 보면 금리 조정 시차가 15개월이나 벌어지기도 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은이 물가 등 국내 경기 상황을 우선으로 고려해 기준금리를 결정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동결로 갈 가능성이 크고 2017년에 경기가 회복되고 나서 금리를 인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을 중심으로 일각에서는 내년에 기준금리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내년에 국내 경기가 크게 악화될 경우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필요성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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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noj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