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30분에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영업담당 상무인 A씨는 저절로 눈이 떠졌다. 출근 시간은 오전 7시. 집(일산)에서 직장(서울)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가량. 늦어도 6시1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조금만 늦어도 이른 시간에 주차장이 되는 강변북로를 제시간 안에 뚫어낼 재간이 없다.

아직은 어두컴컴한 새벽 6시50분. 서울 시내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곧바로 지하에 있는 식당에 가서 아침 식사를 챙겨 먹는다. 집에서 아침밥을 먹은 지 오래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7시30분에 시작하는 임원회의에 들어간다. 사장을 필두로 본부별 임원들이 2층 회의실에 모여 주요 현안에 대한 회의를 시작한다. 회의 분위기는 내내 좋지 않다. 전 세계를 덮친 불경기로 회사 실적이 좋지 않아서다. 세계 경제와 국내 경제를 탓할 수도 있지만, 매출 감소의 책임은 영업담당인 A상무가 걸머져야 할 짐이다. 자연히 회의 내내 자리가 편치 않다.

‘샐러리맨의 꿈’인 임원이 됐다는 기쁨은 채 1년을 가지 못했다. 억대 연봉을 받고 자동차도 나왔지만, 실적이 좋지 않으면 언제라도 자리를 내놔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결재와 보고, 간단한 미팅이 오전 내내 이어진다. 여러 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 봤지만 눈에 콕 들어오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없다. 어느덧 점심시간. 중요한 거래처를 만나야 한다. 중국 식당에서 거래처를 극진히 접대했지만 당장 거둔 성과는 없다.

회사로 돌아오는 차에 오르니 스마트폰으로 오전 실적보고서가 들어온다. 이동 시간도 업무 시간의 연장이다. 상품 판매 추이는 그래도 어제보다는 낫다. 하지만 올해 초 계획한 매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술자리를 겸한 저녁 식사 약속은 거의 매일 계속된다. 오후 7시께부터 시작된 저녁 식사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난다. 새벽 출근이 늘 걸리지만, 밤 12시를 넘어가는 술자리도 피할 수 없다.

주말도 업무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각종 사내외 행사와 골프 약속까지 잡혀 있기 때문이다. 주말 이틀 동안 적어도 하루 정도는 출근해야 한다. 주말을 제대로 쉬어본 지가 오래됐다. 임원이 된 뒤 일에 쫓겨 가정은 뒷전이다. 지난 일요일 늦은 오후 골프 약속을 마치고 돌아오니 집은 비어 있었다. 가족들만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