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야당
“답답하네요. 기업들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눈감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9일 만난 재계 관계자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기업들이 그토록 원하던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을 국회가 끝내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 법은 담당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통과를 요구했지만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요지부동이었다. ‘삼성을 위한 재벌특혜법이어서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기업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야당
기업활력법은 과잉공급업종에 구조조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세제 및 금융 지원을 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중국의 증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기업들이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돕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야당은 시가총액이 5분의 1을 밑도는 회사를 흡수합병할 때 주주총회 대신 이사회 승인만으로 할 수 있게 한 조항을 문제 삼아 ‘삼성전자가 삼성SDS를 쉽게 합병할 수 있게 해주려는 것’이라고 의심해왔다. 야당 소속 홍영표 법안소위 위원장은 “삼성이 악용하면 어떻게 할 거냐. 대기업을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으면 이 법을 절대 통과시킬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에 따라 특별법 적용 대상을 과잉공급 분야의 기업이 과잉공급 해소나 신성장사업 진출을 위해 사업재편을 추진하는 경우로 한정했다. 또 경영권 승계 목적의 사업재편 때 승인 거부, 거짓으로 경영권 승계에 이용 시 사업재편 계획 승인 취소 등의 조항도 신설했다. 진보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조차 최근 공청회에서 기업활력법의 각 조항이 대부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을 정도다.

조선 철강 화학 등 주력산업은 갈림길에 서 있다. 중국의 공급물량 확대에다 부실 수주 여파로 업종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의 올해 적자는 10조원에 이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유화업계의 대표적 수출품목인 테레프탈산(TPA)은 중국의 생산 증가로 2011년 365만t이던 중국 수출량이 지난해 267만t, 올해 9월까지 182만t으로 감소했다. 최근 배럴당 40달러 밑으로 떨어진 저유가로 인해 어려움은 가중되고 장기화될 전망이다.

어떤 식으로든 손을 대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특히 구조조정이 필요한 곳은 대기업이다. 대기업을 제외하면 별다른 효과가 없다. 외환위기 때 경험했듯이 사후 구조조정엔 막대한 공적 자금이 필요하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혈세를 퍼부을 것인가, 아니면 기업 스스로 사업재편을 하도록 지원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야당은 전자를 선택했다. 삼성 관계자는 “전자가 주력업종인 삼성은 기업활력법 적용을 받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삼성을 믿지 못해 기업활력법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야당은 과연 나중에 필요할지 모르는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책임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