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경영 '삼성 신DNA'로 뿌리 내린다
프로야구팀 삼성라이온즈는 내년부터 제일기획 소속으로 바뀐다. 5년간 수익성을 높이는 경영실험을 한 뒤 이후부터는 독립경영을 해야 한다. 프로축구팀 수원삼성블루윙즈 등 다른 스포츠팀은 이미 제일기획으로 소속을 옮겼다. 스포츠팀도 자체적으로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이 부회장의 수익성 위주 경영방식은 마케팅뿐 아니라 인사, 총무, 부동산 관리까지 삼성의 새로운 DNA로 자리 잡고 있다.

◆제품 파는 데만 집중하는 마케팅

이 부회장은 1993년 일본 게이오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2001년까지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투자자본수익률(ROI), 경제적 부가가치(EVA) 등 각종 수치를 중시한다”며 “거의 10년을 해외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며 수익성 위주의 미국식 경영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삼성전자는 작년부터 글로벌 마케팅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작년 말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첼시와의 후원계약도 끝냈다. 스포츠팀 다섯 곳의 운영 주체를 제일기획으로 바꾸는 등 스포츠단 운영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삼성중공업 럭비팀은 아예 해체했다. 과거 “스포츠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을 배우자”고 했던 이건희 회장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스포츠뿐만 아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전시 전략을 바꿨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수많은 전시회에 참여해왔지만, 이제 효과를 따져 참여 여부와 전시면적 등을 조정하고 있다. 내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서도 전시 규모를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 덕분에 삼성전자가 지난 상반기 쓴 판매관리비는 10조89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조7800억원(14%) 줄었다.

이 부회장의 실용주의는 로고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그동안 삼성은 그룹 상징인 타원형 오벌마크 사용에 엄격한 규정을 적용했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삼성전자는 오벌이 없는 ‘SAMSUNG’이란 문자마크를 쓰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오벌마크의 짙은 파란색은 경직된 느낌을 줘 혁신을 지향하는 정보기술(IT) 기업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문자마크는 특정한 색이나 모양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운용·인사 등 경영 전반 변화

삼성이 금융회사들과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사옥 매각협상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재계는 놀랐다. 태평로 사옥이 있는 곳은 풍수지리상 손꼽히는 명당인 데다 바로 옆 삼성본관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곳이어서다. 삼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성생명의 삼성동 한국감정원 부지 매입 △삼성화재의 관훈동 대성산업 부지 매입(1400억원) △삼성SRA자산운용의 삼성금융프라자(삼성동) HSBC빌딩(봉래동) 매입 등 서울 강남과 도심 등 노른자위에만 수십여개 대형 빌딩을 사들였다.

하지만 최근엔 종로타워를 매각하는 등 오히려 팔고 있다. 삼성동 서울의료원 부지 매각 땐 응찰하지도 않았다. 이 부회장은 부동산이 필요하면 빌리거나 사면 된다는 실용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올해 전용기 세 대와 전용헬기 등을 매각했다. 작년엔 삼성 계열사만 쓰던 워드프로그램 훈민정음을 MS워드로 바꿨다.

인사·채용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최근 3~4년 동안 소프트웨어 및 디자인 인력 확충에 중점을 뒀다. 이 회장이 2011년 “소프트 기술의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문한 뒤 나타난 현상이다. 연구개발(R&D) 인력 5만명 중 50%를 차지하는 소프트웨어 인력 비율을 70%까지 늘리겠다는 발표도 했다. 하지만 최근 소프트웨어 직군을 대상으로 역량테스트를 하는 등 구조조정 준비를 하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