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확산되는 '1조 상생기금'] 시한 쫓겨 덜컥 합의한 '1조 기금'…"세계가 웃을 준조세"
불과 이틀 전에 여당과 야당, 정부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 조건으로 합의한 1조원 규모의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조성안에 대해 여당 내에서 수정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당 대표, 원내대표는 물론 통상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새누리당 의원들은 “농어촌상생기금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것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야·정 협상 때 한·중 FTA 연내 발효 시한에 쫓겨 농어촌상생기금 조성에 합의한 것에 대한 자성론도 당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기금”

통상관료 출신 여당 의원들은 이번 여·야·정 협의체 합의 결과에 대해 과도하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정부가 발표한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에 대해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인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은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발적 기부라는 건 있을 수 없다”며 “기업으로선 황당한 건데, 정부가 말하는 ‘자발적’이란 말의 의미를 기업을 해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계에서 “말이 자발적 기부이지 현실적으로 반(半)강제적 준조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은 것이다.

기업들이 제공하겠다는 출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기금에 기부한 돈에 대해선 비용 인정(법인세율 22%)과 세액 공제(7%)를 해준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세금 감면은 결국 세수 감소와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이 때문에 한·미 FTA 체결 때 한국 측 협상대표였던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황당한 협의다. 전 세계가 신기한 일을 했다고 다 웃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지난 3월 여야 합의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이 처리된 후 새누리당 내에서 ‘뒷북’ 논란이 벌어진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김영란법에 대해 내수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법안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자 새누리당 내에서는 뒤늦게 적용 대상과 범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서두르다 졸속 합의”

여당 의원들조차 비판하고 있는 상생기금이 여·야·정 협의체에서 합의된 것은 정부와 여당이 협상 시한에 쫓겨 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던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UN기후변화협약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파리로 출국하면서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등에게 한·중 FTA 비준 동의안 처리를 강하게 주문하자 시간에 쫓기는 모양새가 됐다”며 “무역이득공유제를 요구하는 야당과 타협하기 위해 농어촌상생기금 제안을 정부가 먼저 한 것”이라고 전했다. 여·야·정 협의체에 정부 측 인사로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여했다.

반대 여론이 강하게 제기되자 여당 지도부와 경제통 의원을 중심으로 재검토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합의안을 뒤바꾸기는 어렵다는 게 의원들의 의견이다. 이현재 의원은 “어떻게든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지만 여야 합의사항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훈 의원도 “여야와 정부가 합의한 걸 뒤집기는 힘들지 않겠느냐. 앞으로 다른 FTA를 체결할 때 이번 협의를 선례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밖에 대책이 없다”고 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이달 정기국회가 끝난 후 임시국회 기간에 지원 규모를 축소하는 식으로 수정안이 논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