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공장 볼모 잡은 당진-평택 '땅 싸움'
충청남도 당진시와 경기도 평택시 사이의 ‘땅 싸움’으로 인해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시설로 건설될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의 전력 공급 계획에 비상이 걸렸다. 평택과 지역 경계 문제로 다투고 있는 당진시가 이 반도체 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필수적인 변환소 건축허가를 1년째 거부하고 있어서다. 지역 간 이해 갈등의 불똥이 애먼 기업으로 튀어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문제의 변환소는 한전이 당진과 태안의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충청과 경기 남부로 보내기 위해 필수적인 시설이다. 변환소는 생산한 직류전기를 교류로 바꿔주는 장치다. 2017년 말 평택에 완공되는 삼성 반도체공장에 전기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서도 이 변환소가 꼭 필요하다는 게 한전 설명이다.

본지 9월10일자 A1·3면 참조

한전은 북당진변환소의 건축허가를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다며 김홍장 당진시장과 정병희 부시장 등 관련 공무원 5명을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최근 광주지방법원에 제기했다고 1일 밝혔다. 한전은 지난달 20일엔 당진시를 상대로 대전지방법원에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한전은 지난해 11월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일원의 한전 부지에 7만4125㎡ 규모의 변환소를 짓겠다고 당진시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당진시는 작년 12월 주민과 협의 부족 등을 이유로 건축허가를 반려했다.

한전은 넉 달간 주민 협의를 진행해 문제를 풀고 올해 4월 건축허가를 재신청했다. 그러나 당진시는 8월 당진시에 건설되는 송전탑을 모두 지중화해 달라는 요구사항을 붙여 또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두 차례 건축허가 신청이 무산되자 한전은 8월 충청남도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충청남도행정심판위원회도 당사자들끼리 더 협의하라며 결정을 유보했다. 한전 관계자는 “충청남도도 사실상 결정을 해주지 않겠다는 태도”라며 “더 이상의 설득과 협의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당진시의 변환소 건축허가 지연배경엔 평택시와의 도계(道界) 싸움이 깔려 있다는 게 한전과 전력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설명이다. 김기서 당진시 경제산업환경국장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북당진변환소 건축허가를 반려한 배경에는 평택시와의 도계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평택과 당진 간 영토 분쟁은 두 도시 사이의 바다를 매립하면서 벌어졌다. 바다를 매립해 생긴 96만2350㎡의 땅 상당 부분이 기존 도(道) 경계대로라면 당진시 관할 지역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올해 5월 행정자치부가 대부분 땅을 평택시 소속으로 편입시켰다. 당진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지난 5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평택엔 삼성전자가 15조6000억원을 투자해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축구장 400개 크기의 반도체공장을 짓고 있다. 2017년 12월 완공되면 약 41조원의 생산 유발과 15만여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한전의 북당진변환소 건설이 계속 지연되면서 당진과 태안에서 생산된 전기는 이 공장에 공급될 수 없다.

산업부는 응급조치로 평택 인근 민간발전소에 임시 대체시설을 건설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산업국장은 “당진 발전소의 싼 유연탄 연료를 못 쓰게 돼 연간 3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며 “모두 한전과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진시도 지역자원시설세를 받지 못해 연 70억원의 세수 손실이 생긴다”고 채 국장은 설명했다.

한전이 산정한 손해액은 발전제약 비용 300억원을 비롯해 △착공 지연에 따른 건설사 손해액 연 124억원 △사업지연에 따른 선(先)투자비용 연 157억원 △감가상각 손실비용 629억원 등 총 1210억원이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