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2006년 추진하려다 폐기한 복합금융그룹 지정제를 다시 꺼냈다. 삼성, 한화처럼 산업자본이면서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를 여럿 보유한 기업집단의 재무건전성을 직접 감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룹 위기가 금융사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취지지만 기업들은 금융당국의 월권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5일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그룹 통합감독 방안을 내년 상반기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금융연구원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유럽연합(EU) 등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그룹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 감독 앞세운 또 다른 규제

금융위가 10년 된 해묵은 칼을 다시 뽑으며 내건 명분은 금융의 복합화다. 핀테크(금융+기술) 등 기술혁신과 잇단 규제완화로 인해 이종업종 간 결합이 활발해지면서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이 늘어난 만큼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융감독 '과잉규제' 논란] '금산분리' 규제도 모자라 비금융사까지 감독하겠다는 금융위
국내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강화돼 은행, 금융투자업, 보험업 중 2개 이상을 계열사로 둔 금융그룹은 25개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개별 금융회사 감독 체계로는 금융 복합화에 따른 위험 가능성을 사전에 관리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금융위는 기업집단 중 금융자산 5조원 이상이면서, 그룹 내 금융자산 비중이 40% 이상인 곳을 복합금융그룹으로 지정해 관리할 계획이다. 삼성, 한화, 동부, 태광, 현대그룹 등 5개 그룹이 해당하지만 현대자동차, 롯데, 현대중공업, KT 등도 앞으로 감독대상이 될 수 있다.

금융연구원이 금융위의 연구용역을 받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복합금융그룹으로 지정된 기업집단은 그룹 차원의 위험을 적시에 인식하고 측정, 관리할 수 있는 통합위험관리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A전자가 계열 B생명으로부터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과 횟수 등을 명시하는 등 내부거래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포함된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럽연합(EU) 등의 사례를 볼 때 최소 연 1회 금융당국이 복합금융그룹으로부터 자본적정성 등에 대한 보고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계열사의 자본 중복계상을 시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룹 전체적으로도 적격자본 요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중복 규제로 인식될 소지 충분”

재계는 금융당국의 복합금융그룹 지정제 도입 추진과 관련, “미국, EU, 일본 등에선 산업자본과 은행의 결합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기 때문에 산업자본이 은행의 고객 자금을 부당하게 활용할 가능성이 있어 통합감독이 필요하지만 한국에선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은행법 등을 통해 막아 놓고서 감독은 금융과 산업을 구분하지 않고 하겠다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금융당국이 기업집단 금융그룹을 감독하도록 하는 것은 현행 금산분리 원칙을 수정하기 위한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복규제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상장사는 계열사 간 거래를 공시해야 하는 데다 공정거래법도 상호출자제한집단에 속한 기업들에 한해 내부 거래를 감시하도록 돼 있다.

금융감독원 감독하에 각 은행이 주채무계열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은행들은 여신이 많은 대기업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다. 현행법상 부당 내부거래를 감시할 수단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홍민영 김앤장 변호사는 “모범규준을 마련하더라도 복합금융그룹 지정을 해당 기업이 중복규제로 인식하지 않도록 감독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동휘/김일규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