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퀄컴에 '특허 갑질' 조사결과 통보

특허 끼워팔기 등 횡포…아시아서 연 5조 특허 수익

퀄컴 "공정위 심사 결과는 법 잘못 해석한 것" 반박
국내서 특허료만 2조 챙긴 퀄컴…"시정명령 땐 이익 반토막"

지난 7월1일 미국 퀄컴 본사의 법무담당 임원이 퀄컴의 특허권 남용 의혹을 조사 중이던 공정거래위원회를 극비리에 방문했다. 6월30일 방한한 폴 제이컵스 퀄컴 회장이 “한국 유망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1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한 직후였다.

퀄컴 법무담당 임원은 공정위 고위 관계자를 만나 “퀄컴이 역사상 가장 큰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며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고객이 한국에 많기 때문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4개월 뒤 퀄컴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공정위 시장감시국은 1년간의 조사를 마무리 짓고 특허권 남용과 관련한 세 가지 법 위반 혐의를 적시한 심사보고서를 퀄컴에 공식 통보했다.

◆20년 전에 은인이었던 한국

지금은 공정위가 퀄컴의 급소를 겨냥하고 있지만 20년 전인 1996년만해도 한국은 퀄컴에 ‘은인의 나라’였다. 한국 정부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스타트업에 불과했던 퀄컴이 글로벌 통신칩시장의 ‘특허 공룡’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6년 1월 퀄컴이 개발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을 세계 최초로 통신시장에서 상용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상용화된 CDMA가 중국, 인도, 일본 등으로 널리 확대 적용되면서 퀄컴의 원천기술은 통신시장의 ‘표준필수특허’로 인정을 받았다.

퀄컴은 표준필수특허를 활용해 통신칩 제조에 직접 나섰다.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의 전자기업들이 글로벌 휴대폰시장의 주역으로 발돋움했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퀄컴은 전 세계 시장 점유율 61%를 차지하는 글로벌 통신칩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삼성 통신칩 개발로 멀어져

한국과 퀄컴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삼성전자가 퀄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통신칩 독자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퀄컴은 삼성전자 등을 상대로 퀄컴이 아닌 다른 회사의 모뎀칩을 사용하는 경우엔 높은 특허수수료를 부과하고 퀄컴 칩을 많이 쓰면 특허수수료를 깎아주는 등 차별 대우를 했다. 2009년 공정위는 퀄컴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를 적발하고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과징금 2600억원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정보통신기술(ICT) 전담팀을 조직해 올초부터 퀄컴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퀄컴이 2009년과 다른 유형의 특허권 남용 행위를 해 국내 기업들로부터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공정위가 제기한 퀄컴의 법 위반 혐의는 △표준특허의 차별적 부여 △특허 끼워팔기 △표준특허를 부여한 회사의 특허를 무상으로 사용한 것 등 세 가지다. 퀄컴은 이 같은 특허권 남용을 통해 삼성전자 등 휴대폰 제조업체로부터 통신칩이 아닌 스마트폰 도매가격 기준으로 5%의 특허수수료를 받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퀄컴의 특허권 남용은 매우 중대한 법 위반 행위”라며 “과징금 액수보다 시정명령을 통해 퀄컴이 위법 행위를 더 이상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휴대폰업체 반사이익

퀄컴은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를 받자마자 성명을 내고 “공정위 심사보고서에 기재된 혐의 내용과 결론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며 “퀄컴의 특허권 부여 관행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이동통신업계의 성장을 촉진한 합법적이고 경쟁친화적 활동”이라고 반박했다. 퀄컴이 공정위의 심사보고서에 즉각 반발한 것은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확정될 경우 중국 대만 등의 경쟁 당국도 같은 혐의로 조사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퀄컴의 2014년 연차보고서를 보면 중국 대만 한국의 매출 비중은 84%에 달한다. 작년 한국에서만 2조원의 특허수수료 수익을 얻는 등 퀄컴은 매년 5조원 이상의 특허수수료 수익을 동아시아 3국에서 거둬 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공정위의 퀄컴 제재로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한 기업의 법무대리인을 맡고 있는 변호사는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내리면 국내 휴대폰업체들은 특허수수료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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