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시내면세점 사업을 하려면 정부에 신청해 특허(특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받더라도 5년짜리 시한부 허가다. 일단 허가를 받으면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자동갱신을 해주거나 반영구적으로 사업할 수 있게 해주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5년마다 원점에서 다시 심사를 받는다. 영업 실적이 잘 나오고, 엄청난 투자를 했어도 심사에서 탈락할 수 있다. 심사 결과에 대한 설명이나 평가표가 공개되지도 않는다.

한국에서 면세점 사업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은 철저하게 정부규제 사업이기 때문이다. 1962년 김포국제공항 출국장에 처음 생긴 면세점은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국영 면세점이었다. 1960년대 호주와 뉴질랜드가 시내면세점을 도입한 뒤 한국에서도 1978년 시내면세점의 근거가 되는 관세법상 보세판매장 제도가 신설됐다. 면세점(보세판매장)을 공항에만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시내에도 가능하게 규정한 것이다. 이듬해인 1979년 롯데면세점과 동화면세점이 최초의 시내면세점을 서울 시내에 차렸다.

1984년에는 대통령 지시로 면세점이 대폭 확대됐다.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관광객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면세점 사업을 키워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면세점 규제를 대거 철폐하면서 사실상의 등록제로 전환했다. 일정 요건만 갖추면 면세점을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기업이 뛰어들면서 면세점 사업체 수는 33곳(시내면세점 29곳, 출국장면세점 4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소비가 침체됐고 면세점 사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33곳 중 11곳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업체가 도산하거나 사업을 접었다. 이후 정부는 면세점 사업체의 난립을 막고, 경쟁력을 키운다는 명분하에 2008년 다시 면세점 사업을 허가제로 바꿨다. 면세점 특허 요건을 강화함으로써 진입을 어렵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무렵 일본과 중국 관광객이 빠른 속도로 늘면서 면세점 시장도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경제민주화 논란이 일면서 일부 정치권에서 면세점 사업권을 정부가 대기업에 주는 특혜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2012년 홍종학 의원이 발의한 관세법 개정안은 5년마다 원점에서 면세점 사업권을 재심사하도록 규정했다. 포퓰리즘을 앞세운 정치권이 기업의 장기 투자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일본, 캐나다, 중국, 호주 등 시내면세점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다른 국가는 우리와 같은 특허제 방식이지만 별다른 하자가 없으면 사업권을 갱신해주고 있다. 기업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하고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글로벌경쟁력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면세점 제도 개편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지난달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주최한 면세점 관련 공청회에선 ‘독과점적 시장구조 개선을 통한 면세점산업 육성방안’이 논의됐다. 향후 면세점 시장의 독과점 규제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도다.

이 공청회는 대기업 참여 제한, 특허수수료 인상 등 기업 이익을 환수하거나 대기업의 참여를 배제하는 쪽에 논의를 집중했다. 시장 점유율이 높은 업체는 아예 사업권 갱신을 못 하도록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