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현대중공업 총괄부문장(상무·왼쪽)과 알 나세르 아람코 사장이 지난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본사에서 전략적 협력 양해각서(MOU)에 서명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정기선 현대중공업 총괄부문장(상무·왼쪽)과 알 나세르 아람코 사장이 지난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본사에서 전략적 협력 양해각서(MOU)에 서명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현대중공업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은 것은 중동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업황 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몽준 대주주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총괄부문장(상무·33)이 주도해 더 의미가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6년 주베일항 공사를 수주하면서 시작된 사우디아라비아와 현대가(家)의 인연이 손자까지 이어진 셈이다. 정 상무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우디 수주 우선권 확보

현대중공업과 아람코가 지난 11일 체결한 양해각서(MOU)에는 ‘사우디 합작조선소 건립을 위한 협력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아람코와 사우디 국영 해운사 바리가 추진하던 조선소 건립에 현대중공업도 참여하는 형태다.

아람코는 합작조선소의 규모에 대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합작조선소 건립을 계기로 사우디에서 발주되는 선박에 대한 수주 우선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선박용 엔진 분야에서의 합작은 현대중공업이 개발한 ‘힘센엔진’의 중동지역 수출을 아람코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추후 힘센엔진을 사우디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건립하는 방안 등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람코는 또 현대중공업이 사우디에서 플랜트 사업을 수주하면 현지의 금융 및 인력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정기선 상무가 주도 “제2의 주베일”

이번 MOU는 지난 4월 아람코 이사진이 방한 기간 중 현대중공업 본사를 찾은 게 계기가 됐다. 알리 알나이미 아람코 이사회 의장 등이 울산 현대중공업을 방문했을 때 정 상무가 직접 조선소 내부를 소개했다. 정 상무는 아람코 이사진이 돌아간 직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협력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사우디를 방문하는 등 실무협상을 지휘했다.

이번에 MOU에 서명한 것도 정 상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김정환 조선사업부문 대표도 체결식에 참석했지만, 정 상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직접 챙겼기 때문에 서명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정 상무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후 2009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같은 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약 2년간 근무했다. 2013년 현대중공업 부장으로 재입사했고, 지난해 상무로 승진했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가스·오일업계 행사인 ‘가스텍’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정 상무는 체결식에서 “이번 MOU는 현대중공업에 성장 기회를 가져다줄 ‘제2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이 1976년 시작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규모만 9억6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에 달하는 대공사였다. 정 상무의 할아버지인 정 명예회장이 이 공사를 진두지휘했다.

알 나세르 아람코 사장은 “사우디는 주베일항 공사 때부터 현대가와 인연을 맺어왔다”며 “사우디의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예리함은 정 명예회장 일가의 DNA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