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의 경기 회복 신호가 속속 감지되고 있지만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여타 국가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세계경제에 악재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신흥국에서는 이미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

브라질, 말레이시아, 콜롬비아의 통화가치는 외환위기 수준으로 하락했으며 신흥시장 자금 유출 규모도 지난해의 2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 전 세계 경제 가라앉는데 미국만 승승장구…불균형 증폭
승승장구하는 미국 경제와 달리, 전 세계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세계경제의 불균형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 노동부가 지난 6일 발표한 10월 고용지표를 보면, 지난 한 달간 미국의 새 일자리 수는 27만여 개가 늘었다.

실업률도 5.0%를 기록해 2008년 4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고 시간당 근로소득은 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3분기에는 1.5%로 주춤하기는 했지만 2분기에는 3.9%를 기록해 탄탄한 성장세를 과시했다.

긍정적인 경제지표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다음 달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사정은 정반대다.

우선 7∼8월 증시 폭락으로 충격을 받았던 중국의 경기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의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은 6.9%로 6년만에 처음으로 7% 아래로 떨어진데다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으로 기준선인 50을 밑돌았다.

올 3월부터 국채 매입 등 대대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펼친 유럽도 저(低) 인플레이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0%에 머물렀다.

이마저도 마이너스에서 간신히 상승한 것이다.

일본의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2012년 집권 시기부터 아베노믹스를 천명하며 엔화 약세(엔저) 정책을 펼쳐왔지만, 수출과 내수 소비 모두 얼어붙으면서 GDP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일본의 올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전 분기 대비)은 -0.3%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3분기 성장률도 마이너스를 기록해 경기침체에 빠져들면서 올해 일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

◇ '첩첩산중' 신흥국 수출길 막히고 외환위기 직면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미국은 금리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장 애가 타는 것은 신흥국들이다.

세계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의 경기 둔화로 철광석, 원유 등 주요 수출품의 수요가 뚝 끊긴 데다 통화 가치마저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신흥국들은 이미 외환위기를 겪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통화 순위에 따르면 브라질 헤알화의 통화가치는 연초 대비 20.69% 하락했다.

말레이시아 링깃화 가치는 17.37%, 콜롬비아 페소는 16.48% 각각 떨어져 모두 15% 이상의 낙폭을 보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란드화와 터키의 리라화 가치도 각각 13.88%, 12.42%씩 내렸다.

다.

정의민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화폐가치 하락폭을 감안하면 브라질, 말레이시아, 콜롬비아는 이미 외환위기를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신흥국 시장에서의 자금이탈도 이미 가시화됐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 말까지 신흥국 주식시장에서의 자금유출 규모는 570억 달러로, 작년 285억달러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주식·채권시장에서의 자금유출 규모는 미국 금리인상 시기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올해 신흥국 시장의 자금 순유출액이 5천4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국제금융센터가 추정한 지난달 말까지 주식시장 순유출액의 10배 규모다.

IIF는 올해 3분기에만 신흥국 시장에서 순유출된 자금이 400억 달러로, 리먼 브라더스발 금융위기가 시작됐던 2008년 4분기 때의 1천50억 달러 이후 가장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한국 신흥시장 성장 둔화에 가장 취약…자금 유출 위험도
글로벌 경제 불균형 상황으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인 나라는 한국이다.

우선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위험 요인이다.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의존도는 무려 25%에 달하고 중국에 진출하거나 투자한 국내 기업의 수도 많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 역시 '2015∼2017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GDP의 절반을 중국 등 신흥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며 중국의 성장 둔화가 가속화되면 한국 GDP 성장률은 연간 2.5%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디스는 "한국의 신흥시장 수출은 지난 5년간 연평균 10% 증가했는데, 만약 앞으로 연평균 5%씩 감소한다면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0.4%포인트 하락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국내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주식시장이 요동칠 위험성도 높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단행했던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 한국에서는 20조원이 넘는 금액이 빠져나갔다.

한국은행 국제수지표에 따르면 2004년 5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주식시장에서 유출된 자금규모가 175억2천달러(약 20조2천억원)에 달했다.

또 연준이 1994년과 1999년, 2004년에 금리를 인상할 때마다 한국의 주가는 10∼20% 하락했다.

같은 시기 신흥국의 주가 하락폭은 8∼14%에 그쳤다.

이 같은 우려와 달리 이번 연준의 금리인상은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재개되더라도 과거처럼 큰 폭으로 급격히 올리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외환시장 등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흥국들 중 자원수출국의 경우 유가 하락 때문에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상으로 하락해 위험 수준인 것은 맞다"면서 "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변동환율제를 도입한데다 외환보유액도 넉넉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김경윤 기자 yulsid@yna.co.kr, he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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